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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가곡

Cleo Laine & James Galway - Consuelo`s Love Theme

 


[Cleo Laine & James Galway - Consuelo's Love Theme]


[OST Consuelo's Love Theme]


[Chuck Mangione - Children Of Sanchez]

아일랜드가 배출해낸 뛰어난 플륫 연주자 "제임스 골웨이 (James Galway)"는 듣기 쉬운 클래식 소품이나 영화음악의 리메이크, 가볍고 무드 넘치는 연주음악으로 팬베이스를 폭넓게 확대해 온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켈트 음악이나 정통 클래식을 테마로한 앨범들을 틈틈이 발표하면서 보다 폭넓은 음악세계를 자신의 앨범속에 포함시켜온 아티스트이다.
 
'황금 플룻의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Flute) 로 불리는 '플룻의 제왕'  제임스 골웨이(1939~ Ireland)는 Classic Flutist에 안주하지 않는, 팝 재즈 및 각국의 가곡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하고 섬세한 크로스오버로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고있다. 나이 열살에 아일랜드 플룻 챔피언십 3개부문 수상의 천재성을 보인 그는 1969~75년 카라얀의 베르린 필 수석주자를 거쳐 솔로로 독립하여 성공했고, 존 덴버가 그의 아내를 위해 불렀다는 명곡 'Annie's Song'을 연주한 앨범이 1978년 빅히트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음악상도 수상한 그는 2001년 영국의 작위칭호를 얻었고, 같은 해에 내한공연을 가졌다. 현재 London Mozart  Players의 수석 객원지휘자 겸 플루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Consuelo's Love theme"는 보컬리스트 "클레오 레인 (Cleo Laine)"과 함께 한 80년 앨범 "Somtimes When We Touch"에 수록되어 있는데 척 멘지오니가 연주했던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의 테마곡을 리메이크한 작품. 고색창연한 플룻과 허밍으로 이어지는 보컬의 어울림 속에는 아늑한 꿈결같은 매력이 숨쉬고 있다.


Children Of Sanchez 산체스네 아이들(1978)

       멕시코 / 미국
       감독 --- 할 바렛 (Hall Bartlett)
       음악 --- 척 멘지오네 (Chuck Mangione)
         안소니 퀸 (Anthony Quinn) ..... 헤수스 산체스 (Jesus Sanchez)
         돌로레스 델 리오 (Dolores del Rio) ..... 할머니 (Grandma)
         케이티 후하도 (Katy Jurado) ..... 차타 (Chata)
         루피타 페레르 (Lupita Ferrer) ..... 콘수엘로 (Consuelo Sanchez)
         스타티스 기알레리스 (Stathis Giallelis) ..... 호베르토 (Roberto

영화『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은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실화에 바탕한 동명소설을 '홀 베트렛'(Hall Barttlet) 감독이 영화화 한 작품이다. 멕시코 서민의 삶을 진지하게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라는 새로운 여배우를 소개하며, 우리가 잘 아는 멕시코계 혼혈인 명배우 '안소니 퀸(Anthony Quinn)'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소 어색한 말투이지만 장녀 콘수엘로 역의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의 진지한 연기와 아버지 안소니 퀸의 원숙한 열연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성장한 산체스 家 아이들은 멕시코 시티의 슬럼가 어두운 단칸 골방에서 삶에 지친 아버지와 만삭인 아내, 조카들, 유모, 처형까지 뒤섞인 채로 함께 생활한다. 얼른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네 생활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혹은 지금도 그러한 곳이 있는 것처럼, 영화의 카메라는 60년대 말 멕시코 시티의 한 구석, 삶의 무게가 절대로 가벼울 수 없는 그들 일상의 진한 아픔 속으로 파고든다.

산체스 家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가난과 방황 속에서 막막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무관심으로 밖에 비치치 않는 아버지는 여전히 권위만을 앞세우고, 시내 도처에 또 다른 자식과 아내를 두고 살아간다. 이러한 그를 콘수엘로는 용납할 수가 없다. 급기야는 집을 나가고 여자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려 애를 쓰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다. 콘수엘로의 외할머니는 경직된 그녀에게 남자와의 사랑에서 여자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랑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녀에겐 그것만이 인생의 돌파구는 될 수 없었는가 보다. 그녀가 만난 남자 역시 처자식을 숨겨온 유부남이었고, 그런 그를 콘수엘로는 역시 용납할 수 가 없었다. 이제껏 그녀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하여금 그녀가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욕망과 스스로의 독립심, 자의식이 강한 성격으로 키워냈는지도 모른다. 남자와의 아이는 지워버렸지만, 그녀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콘수엘로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등을 돌리고 떠나간 자식이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딸을 위해 먼길을 달려온 것이다.

아버지는 복권에 당첨이 되고, 모든 아이들의 안식처였던 외할머니는 눈을 감는다. 아버지는 땅을 사서 그들만이 살 새로운 집을 혼자서 짓기 시작한다. 이젠 행복하게들 잘 지낼까 하지만, 또다시 콘수엘로는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집을 나가고, 스튜어디스의 꿈을 위해 심야의 술집, 속옷 차림의 웨이트레스와 승무원 학원생활을 강행한다. 어느날 술집에서 일하는 콘수엘로를 또다시 찾아온 아버지는 그런 차림의 그녀를 창녀로 치부하며 등을 돌리고 만다. 그 후로 콘수엘로는 심한 괴로움에 시달린다. 드디어 아버지는 새집을 다 짓고는 식구들을 불러모은다. 아버지는 노숙생활을 하던 마누엘을 데려오고, 두 딸의 미혼모인 그의 차녀 마르타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와 함께 짐을 싣고 이사를 한다.

삼촌과 숙모, 이사하는 날 창녀 출신의 여자를 아내로 데려온 로베르또와 그녀의 부모 등 온 식구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하고 즐겁게 음식을 먹지만, 갑자기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난 콘수엘로는 아버지에게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없는 무관심과 이기만 있다고 말하며 심한 욕설만 내뱉고는 돌아간다.

아버지는 새로 지은 집의 콘수엘로를 위한 방을 바라보고는, 산 위에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밤이 늦도록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다시 돌아온 콘수엘로는 '용서해 주세요'라고 흐느끼며 아버지의 품에서 부대낀다.

부모에게 자식들은 언제나 치기스런 어린 아이이며, 늘 보채고 불만만 가득 품는 어린애일 뿐인 것일까? '자식을 낳아보기 전에는 절대로 부모의 그 애틋한 사랑을 알 수가 없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새삼 새롭게 들려온다. 언제나 무관심으로만 치부했던 아버지에게 그들은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목 또한 '산체스가 사람들'이 아니라 '산체스의 아이들'이라고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한마디의 따뜻한 말도 없었으며, 그들을 위해 어떠한 물질적 풍요 또한 가져다주질 못했다. 그러한 것들이 부정(父情)을 확인하는 길이라면, 세상에 애비 없는 자식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의 아버지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조용히 그들의 삶을 인도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언제나 그들을 아스라히 조용한 눈길로 내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물밀 듯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가슴이 저미어 오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허나, 영화의 초점은 '가족들간의 사랑'에 있다고 보기에 힘들다. 멕시코 서민들의 삶과 고달픈 현실의 단면과 애환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단지 이 영화는, 그들의 힘겨운 삶의 모습에서 소중하게 확인되는 가족간의 사랑은 더욱 더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의 영화적 구성이나 분위기는 시종 어둡고 쓸쓸하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이 영화가 얼마나 원내용을 영화적으로 잘 해석하고 영화 나름의 시각적 구성이 훌륭한가를 알 수는 없다. 대신 멕시코 민중의 삶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을 영화는 깊숙이 허리 숙여 조심스럽게 들추어내고 있다.
볼수록 애틋한 감동이 묻어 나온다. 왜냐하면, 진솔한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는 그것이 진실한 이야기인가 아닌가에 따라 또 다른 가치척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Children of Sanchez' (산체스의 아이들)은 한마디로 'Chuck Mangione' 음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국내 방송의 BGM으로 자주 사용되어 귀에 익숙한 'Overture' 를 필두로 대곡과 소품이 적절이 안배되어 있다. 특히 'Consuelo’s love theme' 는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를 시작으로 척의 플루겔 혼, 안정감있는 베이스, 아련함을 주는 파스텔 톤의 코러스, 실내악을 연상케하는 첼로 연주가 완벽한 앙상블을 전하며 감동의 물결을 이룬다.

'산체스의 아이들' 은 오스카 루이스 (Oscar Lewis)의 실화에 바탕한 동명소설을 홀 바틀렛(Hall Barttlet) 감독이 영화화 한 작품으로 익히 알고있다. 멕시코 서민의 삶을 진지하게 담고있는 이 영화는 멕시코계 혼혈인 배우 '안소니 퀸(Anthony Quinn)' 의 원숙한 열연과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 신선한 연기가 잘 조화되어 깊은 인상을 남겨준 영화로 전편에 흐르는 사운드 트랙 앨범이다..

Cleo Laine은 1927년 런던의 교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어릴적부터 노래에 소질을 보였던 끌레오에게 보컬과 댄스교습을 받게 했다.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는 끌레오에게 계속 노래하기를 권유했지만 정작 끌레오는 20대 초반 전까지 그녀 자신의 재능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1950년대 초 런던의 댄스홀에서 노래를 시작한 끌레오는 자신의 재능을 점차 발전시키는 가운데 1955년 Esquire레코드사에서 그녀의 첫 데뷰싱글 Cleo Sings British를 발매하고, 이듬해 첫 정식앨범 Meet Cleo Laine을 발매했다.  끌레오는 재즈밴드 리더인 John Dankworth의 오디션에 합격한 이후, 결국 1958년 그와 결혼함으로써 싱어로서의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 이후 지금까지 음악과 결혼 모두에서 서로에게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끌레오와 존은 함께 공연투어를 다니면서 이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이 있는 곳이라면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남편인 존 자신은 끌레오가 펼치는 공연에서 아내인 끌레오의 연주를 담당함으로써도 갈채를 받았다. 존은 무대 전면에 나선 천재인 끌레오의 뒤에 선 천재인 셈이다.

끌레오 레인, 그녀 자신이 거둔 성공은 사실 눈부실 정도이다. 이는 그녀가 노래를 시작한지 30년이 되던 해 최고 권위의 그래미시상식에서 최고여성재즈보컬리스트 상을 수상한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그녀의 오래 친구이자 재즈 보컬리스트인 Ella Fitzgerald는 그녀의 수상을 축하하며 ‘상 받을 때가 됐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의 인기가 높아가자 끌레오는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Live at Wolftrap과 같은 다수의 TV 특별프로에 출연했다.  미국에서의 빈번한 TV 출연 횟수만큼 그 기간에 그녀는 많은 상도 받았다. 버클리 음대에서 명에 음악박사를 수여받았고, 미국 음반 머천다이징 협회인 NARM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영국버라이어티클럽의 올해의 쇼 비즈니스 인물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이런 성공은 드디어 영국여왕으로부터 Dame이란 작위를 수여받음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다.

끌레오 레인은 음반산업에서 거둔 성공 못지않게 배우로서의 명성도 얻었다.  Tony Richardson이 감독을 맡아 런던 Royal Court 씨어터에서 공연된 Flesh to a Tiger에서 배우로서 첫 데뷔한 그녀는 이후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과 Hedda Gabler에서 잇달아 배역을 따냈다. 가수와 배우라는 두 직업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끌레오는 영국의 브로드웨이라 일컫는 West End 뮤지컬인 Showboat와 Colette에도 출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 힛 뮤지컬인 The Mystery of Edwin Drood에서 눈부신 연기를 펼쳐 Tony상 후보에 지명되었고, A Little Night Music과 The Merry Widow에서도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그녀가 무대에서 거둔 성공중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 존의 창작 오페라 또는 발레 작품인 Lady in Waiting에 출연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존과 J. Renault-Williams, 지금은 고인이 된 재즈 뮤지션 Benny Green의 공동작품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끌레오 레인은 콘서트 홀, 재즈 페스티벌, 오페라, 클래식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영국웨스트 엔드에서 미국 브로드웨이 극장, 헐리우드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전세계의 청중들을 사로잡고 있다.  1997년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공연투어를 펼친 후에도 그녀는 아직도 사그러들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녀가 오래 오래 계속되기를! (1998년 8월 Stuart Batsford 씀)


Chuck Mangione "Children Of Sanchez( 1978.01)"
척 맨지오니 Chuck Mangione |Flugel Horn, Trumpet & Keyboard
처음으로 척 맨지오니(1940년생)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형 갭(Gap)과 함께 활동했던 인스트림 재즈밴드 '재즈 브라더즈(Jazz Brothers)'시절이었다. 척의 트럼펫연주는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연주와 아주 흡사했는데그것은 디지가 척에게는 음악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가까운 존재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는 그의 전성기라고 할수있다.
1977년의 앨범 'Feels So Good'이 전세계에서 폭발적인 대히트를 친 것이었다. 1978년에 발매된화 'ChildrenofSanchez'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골든 글로브상(Golden Globe Award)후보에 올랐고 그로서는 두 번째 그래미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에미상 수상작 'Give It All You Got'은 1980년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전 세계인을 감
동시켰던 곡이다. 척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북미나 유럽, 아시아 남미 등 닥치는 대로 다녔다. 이 가운데는 물론 몽트뢰 재즈페스티발(Montreux Jazz Festival)이나 노쓰 씨 재즈페스티벌(North Sea Jazz Festival)같은 유명공연도 포함되어 있었다.

1989년 척은 두 앨범을 발표하고서는 연주를 중단했다. "전 음악을 듣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제겐 그 때가 휴식기간이었지요. 책을읽거나 스포츠를 관람하고, 아니면 낚시를 즐겨했었죠."라고 척은 말한다. 그동안 그는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 로즈마리(Rosemarie)를 만나기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1994년에 컴백해서 일련의 콘서트와 클럽공연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8년에 오디오파일 레이블인 체스키 레코드사의 공동대표인 데이빗 체스키와 그의 형 노만 체스키를 만나게 되었고 체스키 형제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새음반을 녹음하게 되었는데 데이빗 체스키가 라틴풍의 컨셉트를 제안했고 체스키사가 미니멀 마이킹(Minimal Miking)으로 명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척은 흔쾌히 녹음을 승낙했던 것이었다.

그 음반이 바로 1999년에 발표된 [THE FEELING'S BACK]이었는데 이음반은 빌보드 차트에 20주나 랭크되는 등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성공적인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척 맨지오니는 2000년 2월, 처음으로 내한한 두 차례의 공연 전석 매진, 그고 다음 해인 2001년 9월 서울 공연 역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그 동안 애타게 기다렸던 재즈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우리에게 'Feel So Good', 'Children of Sanchez' 등으로 친숙한 척 맨지온(Chuck Mangione)은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프루겔 혼' 주자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 트럼펫, 퍼커션을 다룰 줄 알며, 작/편곡에 있어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40년 이상을 솔로로서만 고집해왔다.

1940년 11월 29일 뉴욕에서 태어난 척 맨지온은 재즈 매니아인 아버지 덕분에 형 갭 맨지온(Gap Mangione)과 함께 여러 재즈 공연들을 다녔다고 한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데, 척 맨지온이 뉴욕의 이스트맨(Eastman) 음악학교를 다니는 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던 갭 맨지온과 함께 '재즈 브라더스(Jazz Brothers)'라는 테너 색서폰 주자 샐 니스티코(Sal Nistico)를 맞아들여 5인조 퀸텟 구성으로 여러 장의 앨범 녹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척은 '65년 우디 허먼(Woody Herman) 밴드, 메이너드 퍼거슨(Maynard Ferguson) 빅 밴드, '65~'67년 아트 블래키 재즈 메신저스(Art Blakey's Jazz Messengers) 등 당대 최고 재즈 밴드에서 각각 활동하며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았다. '68년부터는 색서폰 주자 게리 니우드(Gerry Niewood)가 참여한 척 맨지온 퀄텟(Chuck Mangione)을 결성하면서 이전의 디지 길레스피 스타일에서 프루겔 혼의 부드럽고 따스한 톤과 음색을 갖기 시작했다.

한편 로체스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chester Philharmonic Orchestra)와 함께 'Friends and Love'라는 콘서트를 가졌고, 이것을 계기로 머큐리(Mercury)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데뷔앨범 [Friends and Love...A Chuck Mangione Concert]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앨범은 '70년 그래미상 후보에 지명되었으며, 이후 [Chuck Mangione Quartet]('72), [Alive!]('72), [Together]('73), [Land of Make Believe]('73) 등 네 장의 음반에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대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해밀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Hamilton Philharmonic Orchestra)와 함께 한 [Land of Make Believe] 앨범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Chase the Clouds Away]('75) 앨범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테마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77년 잘 알려진 [Feel So Good] 앨범으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고, '78년 디지 길레스피가 참여한 가운데 자신의 대표 곡들을 연주한 '헐리우드 볼(Hollywood Bowl) 콘서트 실황인 [An Evening of Magic, Live at the Hollywood Bowl]을 내놓아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78년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의 사운드 트랙을 맡아 많은 음반 판매고와 함께 그 해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골든 글러브 후보에 지명되었다.

이후에도 [Give it All You Got] 앨범으로 에미상을 수상했고, 여러 페스티발을 전전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80년대부터 '94년까지는 오랜 기간 활동을 중지하게 된다. 그리고 '90년대 중반부터 여러 클럽을 돌며 공연 활동을 시작하여 체스키(Chesky) 레이블에서 이전 [Feel So Good] 시절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The Feeling's Back]('99) 앨범과 편안하고 따스한 선율이 돋보이는 [Everything for Love](2000)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계에 복귀했다. 최근 척 맨지온은 미국의 인기 TV 드라마 ‘King of the Hill’의 배우로서 열연하기도 하다.
[글 / 정건진 in changgo.com ]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1939년 아일랜드 태생인 제임스 골웨이는 인기와 비평 두가지 면에서 호평을 얻었다. 일찍이 두살때부터 플루트 부는 것을 흉내내기 시작했으며, 2년후 플루트 레슨을 받으면서는 지역 콘테스트에서 상을 3개나 휩쓰는 재능을 보였다. 그는 직업 플루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런던의 로얄 칼리지 오브 뮤직 앤 길드홀 스쿨(London's Royal College of Music and Guildhall School)에서 공부하였다.

그의 첫 직업연주는 영국 Stratford-upon-Avon의 로얄 셰익스피어 극장에서의 윈드 밴드 연주였다. 그는 15년동안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한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트 연주자로 잘 알려져있다(1969-75). 마침내 그는 솔로 연주자로 활동하기 위헤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는 안정적 직업을 포기하고 솔로 연주자로 나설 것을 결심한다. 솔로로 나선 첫시즌 그는 120회의 공연을 하며 그의 A.K. Cooper 플루트 연주는 전세계 수많은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그는 미국의 이스트만 음악학교(Eastman School of Music)에서 플루트를 가르치기도 했다.

제임스 골웨이의 성공의 원인은 다양한 쟝르의 연주 레퍼토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전통적인 연주 레퍼토리와 함께, Henri Lazarof, Thea Musgrave, John Corigliano, and Lowell Liebermann와 같은 작곡가들의 새로운 음악과 기존음악의 새로운 편곡을 선보였다. 그는 팝송과 크로스오버 연주 레퍼토리를 지양한다고 스스로 언급했으나, 종종 그의 음반은 크로스오버 부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클래식 연주자로서 대중적인 인기로 영국 BBC등의 TV에 자주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아일랜드 음악 앨범 녹음에 참가하였고(2002년, 'Celtic Spectacular' 앨범), 1980년대 'The Wayward Wind' 앨범에서는 미국 컨트리가수 실비아와 함께 녹음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선보였다. 또한 1990년대 말에는 'Un-Break My Heart' 앨범에서 영화 Tango del Fuego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하여 연주, 그의 탱고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2001년에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최근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사운드 트랙에 참가하였다. 그의 아내 진 골웨이 역시 플루티스트로 종종 함께 연주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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