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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헌릉 인릉

헌릉 인릉 매표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인릉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기슭에 있는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합장묘이다.

 

 

인릉 정자각

 

인릉 비각

 

조선국 순조대왕 인릉 순원왕후 부좌

 

대한 순조숙황제 인릉 순원숙황후 부좌


인릉의 비각은 2개인데 하나는 1857년 이장 후에 철종이 자신을 왕으로 발탁해준 순원왕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직접 글을 써서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종이 순조를 순조숙황제로 추존하면서 1900년에 세웠다.

 

 

인릉


순조는 정조대왕의 아들로 수빈박씨 소생이며 11세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에 사교금압을 내세워 신유사옥을 일으켜 천주교도를 탄압했고, 안동김씨의 세도속에 정치기강이 문란하였으며,

궁궐화재가 발생하고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천재지변이 발생해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또한 홍경래난이 일어났으며

순조 때부터 안동김씨 60년 세도가 시작되어 왕조 몰락의 근원이 되었다.


순조의 능은 경기도 파주의 인조 장릉 옆에 조성되었는데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철종 7년 헌릉 옆으로 이장되었고 이듬해 순원왕후도 합장되었다.


헌릉 가는 길

 

조선 3대왕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묘역이다.

 

 

 

 

 

태종 헌릉 신도비

 

 

 

헌릉


헌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5째 아들 태종 이방원과 민제의 딸 원경왕후의 능으로

이방원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역할이 컷다.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하고 공양왕을 폐위한 뒤 이성계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태조가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왕자의 난이 시작되었다.

방원은 태조 7년 제 1차왕자의 난을 일으켜 조정의 중신 정도전과 남은을 살해하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방석과 방번을 귀양보내 죽이

세자책봉을 받았으나 이복형인 방번에게 양보하였는데


정종 2년 넷째 형인 방간이 박포와 공모하여 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이방원이 난을 평정하고

정종의 양위를 받아 조선의 3대왕이 되었다.

방원은 왕위에 오른 뒤에 외척과 공신을 배척하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사병을 혁파하는 등 관제개혁에 주력하여 조선의 기반을 닦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헌릉


세종대왕이 부왕에 대한 효심을 담아 태조능인 건원릉의 예로 웅장하게 조성하였는데

태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선릉도감을 설치하여 박자청을 제조로 삼았다.

조선 최고의 건축가 박자청은 자신을 믿고 발탁해준 태종의 묘역조성에

그의 생애에 마지막 예술혼을 쏟아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