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하얀 원피스를 입고 - 양애경
에드몽
2008. 8. 5. 16:31
햐얀 원피스를 입고 - 양애경
하얀 원피스를 입고
지나가네 대전역 앞 광장
스무 살 초여름 아침에 엇갈려
지나가던 스무 살 청년,
그 서늘하면서도 뜨겁던 눈길이
풋풋하던 짧은 머리칼이
오늘은 역전 앞 벤치에
오십 초반의 실직자가 되어 앉아 있네
아직 머리는 숱이 많은 반백인데
충혈되어 흑백의 경계가 흐릿한 눈은
내 얇은 여름 원피스를 뚫어버리네
그가 바라보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옷 밑의 중년 여자의 몸 거기
겹쳐진 자신의 맨살
그의 시선은 엑스레이 광선처럼
얇은 옷감을 뚫고
자신의 낮익은 욕망을 바라볼 뿐이네
여자, 음식, 안락함, 부와 권력
그가 놓친 수많은 좋은 것들을
아아, 느티나무 새순처럼 물이 올랐던
그 봄 나무 그늘 밑의
처녀와 청년이,
다시 스쳐 지나가네, 대전역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