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오동나무의 웃음소리 - 김선우

에드몽 2008. 9. 3. 14:20

 

 

오동나무의 웃음소리 - 김선우

 

 

서른 해 넘도록 연인들과 노닐 때마다

내가 조금쯤 부끄러웠던 순간은

오줌 눌 때였는데

문 밖까지 소리 들리면 어쩌나 힘 주어 졸졸 개울물 만들거나

성급하게 변기 물을 폭포수로 내리며 일 보던 것인데

마흔 넘은 여자들과 시골 산보를 하다가

오동나무 아래에서 오줌을 누게 된 것이었다.

뜨듯한 흙냄새와 시원한 바람 속에

엉덩이 내놓은 여자들 사이,

나도 편안히 바지를 벗어 내린 것인데

소리 한번 좋구나!

그중 맏언니가 운을 뗀 것이었다

젊었을 때 왜 그 소릴 부끄러워 했나 몰라.

나이 드니 졸졸 개울물 소리 되려 창피해지더라고

내 오줌 누는 소리 시원타고 좋아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딸애들은

누구 오줌발이 더 힘이 좋은지,

더 넓게, 더 따뜻하게 번지는지

그런 놀이는 왜 못하고 자라는지 몰라,

궁금해하며 여자들 깔깔거리는 사이

문 밖까지 땅 끝까지

강물소리 자분자분 번져가고

푸른 잎새 축축 휘늘어지도록

열매 주렁주렁 매단 오동나무가

흐뭇하게 딸들을 굽어보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