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나무의 웃음소리 - 김선우
서른 해 넘도록 연인들과 노닐 때마다
내가 조금쯤 부끄러웠던 순간은
오줌 눌 때였는데
문 밖까지 소리 들리면 어쩌나 힘 주어 졸졸 개울물 만들거나
성급하게 변기 물을 폭포수로 내리며 일 보던 것인데
마흔 넘은 여자들과 시골 산보를 하다가
오동나무 아래에서 오줌을 누게 된 것이었다.
뜨듯한 흙냄새와 시원한 바람 속에
엉덩이 내놓은 여자들 사이,
나도 편안히 바지를 벗어 내린 것인데
소리 한번 좋구나!
그중 맏언니가 운을 뗀 것이었다
젊었을 때 왜 그 소릴 부끄러워 했나 몰라.
나이 드니 졸졸 개울물 소리 되려 창피해지더라고
내 오줌 누는 소리 시원타고 좋아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딸애들은
누구 오줌발이 더 힘이 좋은지,
더 넓게, 더 따뜻하게 번지는지
그런 놀이는 왜 못하고 자라는지 몰라,
궁금해하며 여자들 깔깔거리는 사이
문 밖까지 땅 끝까지
강물소리 자분자분 번져가고
푸른 잎새 축축 휘늘어지도록
열매 주렁주렁 매단 오동나무가
흐뭇하게 딸들을 굽어보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