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 낮잠
낮잠 - 남진우
헌책방 으슥한 서가 한구석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들춰본다
먼지에 절고 세월에 닳은 책장을 넘기니
낯익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전생에 내가 썼던 글들 아닌가
전생에서 전생의 전생으로 글은 굽이쳐 흐르고
나는 현생의 한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한 세월 한세상 삭아가는 책에 얼굴을 박고
알 수 없는 나라의 산과 들을 헤매다 고개를 드니
낡은 선풍기 아래 졸고 있던 주인이 부스스 눈을 뜨고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 말한다
인생은 짧고 낮잠은 길다
으슥한 서가 한구석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책을 꽂고
조용히 돌아서 나온다
Album 'Unam Ceylum' - Bi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