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낮잠 - 남진우

에드몽 2008. 11. 4. 12:22

고흐 - 낮잠 

 

 

 낮잠 - 남진우

 

 

헌책방 으슥한 서가 한구석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들춰본다

먼지에 절고 세월에 닳은 책장을 넘기니

낯익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전생에 내가 썼던 글들 아닌가

전생에서 전생의 전생으로 글은 굽이쳐 흐르고

나는 현생의 한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한 세월 한세상 삭아가는 책에 얼굴을 박고

알 수 없는 나라의 산과 들을 헤매다 고개를 드니

낡은 선풍기 아래 졸고 있던 주인이 부스스 눈을 뜨고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 말한다

인생은 짧고 낮잠은 길다

으슥한 서가 한구석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책을 꽂고

조용히 돌아서 나온다

 

 

  

Album 'Unam Ceylum' - Bi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