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틈, 사이 - 복효근

에드몽 2009. 5. 15. 22:58

 

 

 

 

틈, 사이 - 복효근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 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생겨나면서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가
찻물을 새지 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 벽도
양생되면서 제 몸에 수 없는 실핏줄을 긋는다
그 미세한 틈, 사이가
차가운 눈바람과 비를 막아준다고 한다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거기서 나온단다
끊임없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벌어진 틈, 사이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 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 노여움의 불길과 내 슬픔의 눈물이 스며들 수 있게
서로의 속살에 실뿌리 깊숙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Arpeggione Sonata for cello&Piano A minor D821,lll Allegretto

- Schu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