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남꽃 - 문정희
새벽 두 시인데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나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아요 저녁 때 사거리에서 청담사거리를 묻는 노인에게 그만 봉은사거리를 가리키고 말았어요 그 노인은 지금 쯤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요
청담사거리를 찾다 지쳐 수천마리 귀뚜라미들을 데리고 쓰러져 있을까요 외줄에서 떨어진 줄광대처럼 산발한 어둠속에 떨고 있을까요 정육점의 불빛처럼 충혈된 밤 사방에서 컹컹 내지르는 짐승소리를 들으며 모래바람 날리는 자동차들 속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성직자처럼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요
죽어서도 석남꽃 머리에 꽂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온 신라의 남자처럼 벌써 죽어 아름다운 관에 누워 있을까요
내 불면의 가지 끝에 검은 눈썹 달이 갈매기처럼 끼룩거리고 있어요
세상에는 왜 이리 길을 묻는 사람이 많을까요 여보, 나침판과 지도는 모두 어디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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