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따라 발길따라...

지리산 둘레길4구간(세동마을 - 송대마을 - 벽송사 - 서암정사 - 의중마을 -금계)2011.10.30

에드몽 2011. 10. 31. 10:12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른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랑 집을 나섭니다. 
지리산 언저리의 가을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죠.
 
가을이 되면 가보고 싶었던 지리산 둘레길...
올 가을은 가뭄이 심했었는데 단풍철이 되니 흐린날이 많고 비도 잦았지요.

오늘은 대체로 맑은 날이라고 해서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는 몇 해전 봄날 전북 남원군 인월에서 장항마을, 등구재를 거쳐 실상사까지 걸었는데
너무 좋았던 기억입니다.
조팝꽃, 구슬봉이, 붓꽃 그리고 배꽃향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산골풍경의 싱그러움이
어릴적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포근함과
향수를 달게게 해주는 정겨움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겐 특별한 분이 동행을 합니다.
신나리님하고 여담소님 그리고 알래스카님입니다.
산에서 만나 알게 된 산객인데... 
오래도록 가까이 하고 싶은 분들입니다.
그분들과 정담을 나누며 산길을 걷고파서 A코스는 피하고 B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있을 즈음
세동마을 입구에서 10여명이 내렸습니다.
 우리가 내린 세동마을엔
화창한 가을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함께 한 분들
가을의 정취를 듬뿍느끼고 유쾌하고 안전한 산행이 되기 바랍니다.
 

 
 
 
지난주 주왕산에 다녀왔을 때 담아온 사진이 저장되어 있어
귀로에 지우다 세동마을 초입부터 찍었던 사진을 삭제하고 말았네요.
 
이곳에 올린 사진은
앞에 몇 장은 여담소님에게 얻은 사진이고
중간에는 신나리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끼워넣어 보았습니다.
 
 
 
 신나리님(왼쪽) 아내(오른쪽)
 
세동마을 대구댁쉼터
 
 
쑥부쟁이
 
다랭이논 가을걷이
 
산국
 
산국
 
 
 
담쟁이 덩굴사이로 본 봉화산(920m)
 
 
 함양군 봉화산(920m)
 
 
 
 
세진대
 
 
세진대
 
 
 
엄천강
 
엄천강은 지리산 칠선계곡, 백무동, 벽소령계곡과 전북 운봉에서 내린 물이
인월, 산내의 시냇물과 합류하면서 엄천강을 만들어
의중 금계마을 앞을 지나며
 
엄천강이 경호강으로 이름을 바꿔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 남강을 지나 진양호까지 80여리를 달려
진양호로 흘러듭니다.
 
 함양군 봉화산(920m)
 
 
 
 
 
 
 
 
 
 
 
 
 
 
세동마을에서 시작된 지리산 둘레길 4코스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 그리고 흙길을 반복하며 임도를 따라 송대마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객은 흙을 밟으며 걷고 싶지만
지리산 자락에서 삶을 꾸려가는 분들은 자신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도로포장을 해야하겠지요.
 
흙냄새나는 길을 걷고 싶은 산객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곱게 물드는 지리산 자락의 단풍을 바라보며
임도 옆에 핀 산국의 향기를 품으며 산길을 걷습니다.
 
 
 
 
 
 
 
 
 
 
 
 
 
세동마을에서 송대마을에 이르는 임도 옆에는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짙은 향기를 내보이며 산객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산객은 꽃을 따서 모자와 베낭에 꼿고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산국 향기를 산객의 가슴으로 가져다 줍니다.
 
산국은 국화과의 다년생 풀로 키는 40~80cm 정도 자라며
10~11월에 노란꽃이 피는데 향이 좋아
꽃은 국화차를 만들기도하고 술을 담기도 하는데
국화차의 효능은 고혈압, 두통, 어지럼증, 안질치료에 쓰인답니다.
 
산국차와 산국술을 만들어볼 생각으로 
아내와 나는 산국꽃을 비닐봉지에 따왔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따온 산국으로 만들어본 

산국차

 

산국차 만드는 방법은

산국 꽃을 따 물에 살짝 씻어 물기를 없앤다음

찜솥에 넣어 살짝 쪄 말리면 됩니다.

 

산국차는 향이 강하기 때문에

찻잔에 말린 산국꽃을 3~4송이 넣고 끓인 물을 부우면

말랐던 꽃이 다시 피면서 차가 노란색으로 우러나게 되는데

이 때 찻잔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잠싯동안 감상하고 마시면

은은한 향과 약간 쓴맛이 어우러져

깊어가는 가을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게 해줄것입니다.

 

그리고 산국은 술을 담아도 향이 좋은데

쩌서 말린 산국꽃을 술병에 넣어

소주를 부어주면 됩니다.

이때도 말린산국꽃을 적당히 넣어야 술향이 진하지 않아

맛있는 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송대마을 가는 길에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송대마을 뒷산으로 오르면 중봉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1917m)에 오를 수 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
 
고사리밭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고사리밭입니다.
예전에는 제사음식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음식재료와 건강식품으로 호평받고 있어 많은 분들이 드시고 계씨죠.
주로 중국산이 들어와 국산으로 둔갑하여 판매되고 있어
국산 고사리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요.
 
묵는 전답에 농부의 손길 닿지 않는 사이
고사리가 자리를 잡아
산골 분들의 농외 소득이 되고 있습니다.
 
 
 
 
 
 
 
  
송대마을
 
 
 
 
 
와불산
 
 
 
송대마을
 
 
 
 
 
와불산
 
와불산 왼쪽아래에는 선녀굴이 있는데...
선녀굴에는 사철 흐르는 선녀샘이 있어 그곳에서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고 해서 선녀굴이라고 유래합니다.
선녀굴에는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순덕은 1933년 함양군 삼장면 내원리에서 정주삼의 1남3녀의 둘째딸로 태어나
산골소녀로 자라던 중 지리산에 숨어든 여순반란군이 동네에 들어오면서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그녀 나이 15세인 1944년, 
반란군 토벌대인 군경에 의해 마을이 소개령이 내려져
대하리에 있는 고모네 집으로 피신하였고
6.25전쟁이 발발하던 해
그곳 인근마을의 17세 소년 성석조에게 시집을 갑니다.
16세의 어린나이에 시집을 보낸 이유는 가난으로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함이었겠지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것도 잠시
인민군이 점령하에 있던 마을
그녀의 가정사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남편 성석조가 애국청년단에 가입하여 부역을 하게 된거죠.
배움이 적고 순진무구한 산골청년 성석조는 인민군의 꼬임에 넘어가
이데올르기가 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낙동강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던 유엔군은
전세를 뒤집을 기회를 찾던 차에 
맥아더 장군의 지휘아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인민군은 북으로 후퇴를 하게 되고
미쳐 도망가지 못한 인민군들은 지리산에 숨어들어 남부군을 조직하게 됩니다.
 
인민군이 후퇴하고
세상이 바뀌게 되니 인민군에 부역햇던 성석조는
동네에서 부역자로 낙인 찍혀 가족을 놔둔채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고
남편 성석조의 부역행위와 빨치산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정순덕은 빨치산 토벌대에 끌려가 시달림을 받다 그녀도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갑니다.
 
정순덕은 남부군 취사부에 들어가 있던 중 남편을 만났으나
군경의 토벌작전에 밀려 대성골에 모여든 남부군을
1952년 1월 2주간의 미군의 B2폭격기를 이용한 대규모 토벌작전으로 남부군은 괴멸되고
이때 남편 성석조를 잃게 됩니다.
 
 
 
 
 
 
대성골 토벌작전에서 살아남은 빨치산정순덕은 취사부에서 전투병으로 변신하여
군경과 맞섰으나 토벌작전이 있을 때마다 빨치산 숫자는 줄어들게 되고
1955년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지리산빗점골에서 사살되고
국당국은 1955년 5월 23일 지리산 남부군 소탕 완료를 선언하게 됩니다.
 
여자빨치산 정순덕은 동료 이홍희, 이은조와 함께 살아남아
전라북도 장수와 무주 덕유산을 옮겨 다니며 숨어 지내다
1961년 선녀굴에서 은신하고 있던 중
 
추성리마을의 빨치산 신고 책임을 맡고 있던 사찰경찰인
문영만과 지동식이 곰사냥을 하려고
마을의 석이버섯 채취꾼 허정갑의 안내로
사냥개를 앞세워 선녀굴에 갔다가
선녀굴에 은신해 있던  빨치산 정순덕알당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이은조를 선녀굴에서 사살하게 됩니다.
 
빨치산 정순덕은 이은조를 땅에 묻고 이홍희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산청군 일대를 전전하며  숨어 지냅니다.
자신의 고향인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에서 1963년 11월 정보경찰의 계략에 속아 마을로 내려왔다가
이홍희는 현장에서 사살되고 정순덕은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생포 됩니다.
 
이는 6.25 전란 후 13년만의 일이고
휴전이 선포된지 10동안 군경의 추적을 피해
여인의 몸으로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삼키며 지리산에서 살았다는 거죠.
최후의 파르티잔으로 말입니다.
 
그 후 정순덕은 대한민국으로의 전향을 거부하며 대구, 공주, 대전교도소를 옮겨다니며 23년을 복역하다가
1985년 8월 15일 풀려나
부산 가죽공장, 서울이 가구공장을 전전하며 지내다
비전향 장기수의 거처인 낙성대 만남의 집에 머물렀고
2000년 비전향 장기수 북한 송환 때 송환을 요구했으나 당국이 거절하고
2001년 2차 송환을 요구했으나 전향했다고하여 역시 거절...
2004년 4월 1일 생을 마감하여 파주 보광사에서 영결식을 올려집니다.
 
순진무구한 산골처녀 정순덕
좌우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편을 따라 파르티잔이 되어
지리산공비 토벌작전으로 피아 2만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되었음에도
지리산 산속에서 13년동안 생존하여
당국에 체포되어 대한민국으로의 전향을 거부하고
남편 따라 최후의 파르티잔으로 남았다는 것은
지리산 빨치산의 전설로 
 송대마을을 찾는 산객의 입에 오르내릴 듯 합니다.
 
 
 
 
 
 
 
 
곶감이  익어가는 송대마을
 
삶의 짙은 향기가 보여지는 풍경입니다.
곶감을 말리는 엉성한 헛간에는 과거와 현재가 함게 합니다.
수백년이 되었을 법한 옹기부터 문명의 이기인 함지박과 플라스틱 의자
가을 걷이를 담아 시장과 대처에 나가 있을 자녀들에게 가져갈 마대자루...
그리고 도로명 주소도 보이네요.
 
어지러워 보이지만
주인의 손길이 곳곳에 베인 잘 정돈된 모습입니다.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 안내도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
 
송대마을 뒷산인 와불산은 현재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어
국립공원 지리산의 자연보호와 근래에 방사된 반달곰의 자연 방사에 성공하기 위해
2017년까지 등산객 출입이 제한 되어 있습니다.
 
안내소 마당에는 들깨가 심어져 있네요.
송대마을에는 경작지가 없어
마을주민들은 산나물, 버섯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60대 쯤되어 보이는 송대마을 아낙에게 벽송사 가는길을 물으니
두군데를 알려줍니다.
하나는 사진에 보이는 길을 따라 가면 벽송사 가는 길이 나온다며
길이 좀 복잡해 찾기 힘들거라 하고
다른 하나는 송대마을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고 해서
우리는 송대마을 위로 향하는 길을 따라 가다 길이 막혀 있어 되돌아 옵니다.
지금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벽송사를 거쳐 금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텐데 길을 찾느라 지체하다가 해가 넘어가면 난감한 상황이 올 듯해서...
 
와불산을 배경으로 이곳의 억새풀이 좋아 사진 몇 컷을 담아봅니다.
 
 
 
 
 
 
 
 
 
송대마을로 되돌아 오니
한 무리의 산객이 마을로 올라옵니다.
그분들에게 벽송사 가는 길을 물어 찾은 길입니다.
 
저에게 벽송사길을 알려줬던 아낙은 마을위로 가도 된다며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산객이 올라오는 방향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길을 안내하는 표지가 없고 배를 심은 과수원 가온데의
작은길을 따라 갑니다.
 
 
 
 
 
 
 
 
용담
 
가을의 진객 용담입니다.
 
몇 년전
설악산 대청봉에서 희운각대피소로 내려가던 길에 처음 만났던 용담...
이꽃을 과남풀이라고도 하는데 피어 있지 않고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어서 아쉬움이 컸더랬죠.
꽃이 활짝핀 모습을 보고 팠었는데
작년 가을 충청북도 영동의 장령산 휴양림으로 버섯 따러 갔다가
활짝핀 용담을 담았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리산의 용담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네요.
꽃이 넘어져 좀 훼손되기는 했지만
도도한 자태가
가을산의 진객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용담
 
 
송대마을에서 벽송사능선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가파릅니다.
산은 육산이지만 산길이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아
매끄럽지 못합니다.
길을 걷다보면 비슷한 간격으로 바위에 붓으로 벽송사, 송대마을 가는 길이라는 표시를 해놓아
산객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일행은 오래된 묘지 옆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대전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한잔씩 나눕니다.
대전 생막걸리의 달콤함이
산길을 달려온 산객의 입에 잘 어울리네요.
 
점심을 들고 후식으로 포도와 사과를 먹고 있는데
A코스를 갔던 산객이 길을 따라 올라옵니다.
우리도 서둘러 길을 재촉합니다.
 
가을산은 해가 일찍 집니다.
 
 
 
 
 
 
송대마을에서 벽송사로 향하는 산길은
산객이 많이 찾지 않는 길이고, 이정표도 없고  우리 일행도 초행길이라서
제가 선두에서 길을 찾아 안내를 합니다.
 
점심 식사 후 벽송능선으로 10여분을 올랐을까
제 오른쪽 팔둑 안쪽이 따끔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옷을 걷어 아픈곳을 살펴보니 벌에 쏘인 듯 붉은 반점이 보입니다.
혹! 산길에 있을지 모르는 땅벌집을 건드리지 않았나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벌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안심을 했으나
벌에 쏘인 곳의 통증이 몰려옵니다.
마치 맨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온몸에 소름 돋는 아픔...ㅠ..
 
신나리님이 벌레에 물린데 바르는 연고를 가져와 환부에 발랐더니
통증은 좀 가시는 듯합니다만
벽송사에 내려올 때까지 아픔이 계속됩니다.
 
그래도 제가 쏘였기에 천만 다행입니다.
 
 
 
 
 
 
 
 
 
지리산 오솔길 - 이태수


지리산 고즈넉한 자락에 들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희미해지는 낮달.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멧새들의 낮고 따스한 지저귐.

자꾸만 물러서는 길 더듬어 떠돌던
내 발자국들이 빚어놓은

저 희미한 포물선. 그 너머로
하염없이 가는 몇 점 조각구름,

무심한 바람 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나뭇잎들.

작아지고 작아지다 가까스로 만난
산속의 작은 길 하나.

마음 비우고 길 다 버리고서야
가르마처럼 열리는 숲 속 길,

햇살 뛰어내리며 되비추는
우리의 저 오솔길 한 줄기.

 
 
올해의 단풍은 곱지 않다고 합니다.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고, 가을가뭄 때문이랍니다.
지리산 벽송사능선의 단풍은 대체로 노랑색으로 물들었네요.
 
키가 큰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는 갈색으로 물들고
산객의 눈높이에서 자라고 있는 생강나무는 노랑색, 단풍나무는 주황색과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우리에게 강렬한 감동을 주고 있지 못하네요.
 
그래도 산객은 즐겁습니다.
산길에 적당히 쌓여잇는 낙엽을 밟으며
단풍이 물드는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가을산을 찾은 산객만이 느끼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잣나무
 
 
송대마을 뒷산의 선녀굴과 벽송사 능선은
공비토벌과정에 불을 질러 민둥산이었답니다.
 
앞에 보이는 잣나무숲은 수령 40여년 것으로 추측되어 
근래에 조림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60~70년대 사방사업의 일환으로 심어진 듯한데 일정간격으로 반듯하게 줄을 서서 자라고 있네요.
 
그런데...
나무가 촘촘히 심어져 있어 간벌의 필요성이 늬껴집니다.
 
 
 
벽송사능선
 
벽송사로 내려오는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집니다.
추성리 계곡에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눈오듯이 낙엽이 날리고
산객은 방금 떨어진 그 낙엽을 밟아가며 산길을 걷습니다.
 
함께 온 여산객이 노래를 부릅니다.
롤랑조페 감독의 영화 'THE MISSION' 의 삽입곡이죠.
 
'Ennio Morricone'의 'Gabriel's Oboe' 의 곡이 좋아
사라 브라이트만이 모리코네를 찾아가
가사를 붙여 자신에게 달라고 하여 부른 노래
 
'Nella Fantasia'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봅니다.
나는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영혼 깊은 곳까지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나는 환상속에서 밤조차도
어둡지 않은 밝은 세상을 봅니다
나는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을 꿉니다.
영혼 깊은 곳까지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나의 환상속에서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나는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영혼 깊은 곳까지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여산객은 지리산길에서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지리산 최후의 파르티잔 정순덕이 꿈꾸는 세상일지도 모르는...
정직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박애가 충만한
그런 세상을 말입니다.
 
 
 
 
 
 
 
 
 
 
 
 
 
 
 
 
 
 
 
 
 
 
 
 
 
 
 
 
 
 
 
 
벽송사
 
 
 
벽송사 견공
 
 
벽송사 산신각
 
벽송사 원통전
 
 
 
碧松寺(벽송사)
 
벽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에 소속된 사찰로
조선 중종 1520년에 벽송지엄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그의 문하에서 서산대사가 수행하여 득도한 사찰입니다.
그 후 1704년 숙종 때 크게 중수하여 불당. 법당. 요사 등 전각이 30여동에 이르고 수행하는 스님이 300여명이 넘는등 크게 번창하였으나
6.25전란 때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면서
빨치산 토벌 중에 국군에 의해 방화 소실되었고
1960년대 이후 원응선사에 의해 법당. 요사 등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벽송사는 호국불교의 요람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운 서산대사와
동국대학교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를 한 초월동주대사를 배출한 사찰입니다.
 
 
 
 
벽송사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 안내도
 
 
 
 
 
 
 
 
 
 
 
 
 
 
 
 
 
 
 
 
 
 
 
 
瑞巖精舍(서암정사)
 
서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에 소속된 사찰로
6.25전란 때 지리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수 많은 남북의 젊은이 들이 희생되어
부처님의 대자대비 광명으로
그 원혼은 달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서암정사
 
 
 
 
 
 
 
 
 
 
 
 
 
 
 
 
 
 
 
 
 
의중마을
 
 
 산행의 끝이 보입니다.
 
오후 4시를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니까
세동마을에서 오전 10시경에 출발하여 송대마을을 거쳐 벽송사를 지나 의중마을에 왔으니
산행시간이 대략 6시간여가 소요된 듯합니다.
빠른걸음으로 4시간을 예상했으니까
천천히 여유롭게 산행한 셈이지요.
 
의중마을을 지나는데 마을 아낙이 바구니에서 홍시감을 하나 주십니다.
감사의 인사를 드렸는데요.
아낙이 바구니에서 홍시를 집어들었는데 약간 상처가 난 것을 확인하시고
곱게 잘익은 것으로 골라서 주시더군요.
아직도 따뜻한 인심이 남아 있는 마을 입니다.
 
산객은 도회지에서 주로 살다보니 산행 들머리나 날머리에서
농작물에 손을 대서 현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을 종종 볼 수 가 있습니다.
산객은 산행 중에 죄의식 없이 현지인이 가꾸는 농산물에 손을 대는 것이지만
현지인은 자신의 생업입니다.
산행중에는 남의 농작물에 절대 손을대서는 안될 것입니다.
 
의중마을 아낙네가 주신 홍시감...
아내랑 나누어 먹었는데
정을 담아주셔서 인지 정말 달콤하더만요.
 
의중마을
 
의탄교에서 바라본 엄천강의 저녁 풍경
 
 
지리산은 우리민족의 영산이면서
동학혁명부터 근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커다란 아픔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아픔은 우리 민족과 함께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리산 공비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죽어 그 수가 2만명을 헤아립니다.
그들이 어떤 동기에서 죽어갔든 모두가 민족의 평화와 나은 삶을 위해
젊음을 바쳐 치열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빨치산을 토벌 했던 군경들, 남부군과 빨치산 정순덕 그리고  영문도 모른채 억울하게 죽어가야했던 분들이 추구했던 세상은
아마도
가브리엘 신부가 바랐던 세상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정직하고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박애가 넘쳐나는 그런세상이 아닐까요?
 
지리산에서 죽어간 분들의 원혼을
위로하면서...
 
지리산 둘레길을 즐겁고 무사히 다녀온 것에 감사합니다.
 
 
 Violin concerto G minor Op 26, l
- Max Br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