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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간이역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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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 김 선 우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애

함석집 마당가 주문을 걸 듯 덮어놓은

고운 흙 가만 헤치면

속눈썹처럼 나타다던 좋.아.해

얼레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 미안해 - 흙글씨 새기던 당두마을 그애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이사오고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나는 남자를 알고

귀향길에 때때로 소문만 듣던 그애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갔다는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때로 간이역을 생각했다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 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철공일 한다는

출생신고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는

내 추억의 간이역 삶이라든가

용접봉,불꽃,희망 따위 어린날 알지 못했던 말들

어느 담벼락 밑에 적고 있을 그애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당두마을,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맴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3악장 (Allegro)
Maxence Larrieu, Flute
Rafael Puyana, Harpsich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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