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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酒 - 문정희

 

 

 

 

酒 - 문정희 

 

 

술이 나를 찾아오지 않아
오늘은 내가 그를 찾아간다
술 한번 텄다 하면 석 달 열흘
세상 곡기 다 끊어버리고
술만 마시다가
검불처럼 떠나가버린 아버지의 딸
오늘은 술병 속에 살고 있는 광마를 타고
악마의 노래를 훔치러 간다

그러나 네가 내 가슴에 부은 것은
술이 아니라 불이었던가
벌써 나는 활 활 활화산이다
사방에 까맣게 탄 화산재를 보아라
죽어 넘어진 새와 나무들 사이로
몸서리치며 나는 질주한다
어디를 돌아봐도 혼자뿐인 날
절벽 앞에 술잔을 놓고
나는 악마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댄다

으흐흐! 세상이 이토록 쉬울 줄이야

 

 

 

The Siegfried Idyll - W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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