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큰아들로 "왈츠의 왕"의 칭호를 받는다.
1825년 10월 25일 빈에서 태어나 1899년 6월 3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요한은 아들 요한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으나
아들은 아버지 몰래 작곡법과 바이올린 연주기법을 익혀
19세 때에는 빈의 유명한 토마엘 레스트랑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1849년 아버지 요한이 죽은 후 아버지가 경영하던 악단을 인수,
합병하여 유럽 각지로 왈츠 연주여행을 하여 큰 인기를 얻어
마침내 "왈츠의 왕"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1863년, 빈으로 돌아 온 요한은 오스트리아 왕궁 무용회 지휘자로
취임한 후 많은 왈츠의 명곡을 썼다.
45세 때인 1870년부터는 춤을 위한 왈츠보다는 관현악으로서의 듣는 왈츠를 쓰기 시작했고,
특히, 희가극 Operetta 을 많이 썼다.
음악형식의 한 장르인 비엔나 왈츠는 모두 그가 창출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는 빈 특유의 정서를 지닌 음악으로 악보보다는
즉흥연주가 주체를 이루기 때문에 악 흥을 좋아하는 빈 시민을 매혹시켰다. "왈츠의 왕" 요한이 남긴 작품으로는 오페렛타에서 <박쥐>,
<집시남작>이 있으며, 왈츠 부문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생애>, <빈 숲속의 이야기> 등 168곡의 왈츠를 비롯하여
폴카. 마즈르카 외에 소품 관현악이 다수 있다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도 가장 화려한 왈츠의 면모를 자랑하는 (황제왈츠).
그의 작품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헌정 된 반면
(황제 왈츠)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무에게도 헌정되지 않았는데,
그의 작품 대부분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40주년
기념축전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결국 그것은 작품 434(황제 축전 왈츠)로 판명되었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베를린 즉위식 1년을 축하하는
피로 무도회에서 본인 지휘로 초연하였으나
역시 초연과 초판간 사이가 짧은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혹자는 스스로에게 헌정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하기도 했지만,
수 많은 추측을 뒤로하고 누구에게도 헌정되지 않은<황제 왈츠>는
스스로 빛나기에 충분했다.
바로 60세를 넘어선 슈트라우스가
본인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그대로 투영해내며 탄생시킨 까닭이다.
오케스트라의 크고 웅장한 선율과
각 파트별 부드럽고 우아한 선율이 교대되는데,
이는 작곡가가 단지 물질적으로 뿐만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
(출처:대전문화예술의전당 프로그램 노트 중에서)
위 작품은 2010년 대전시민과 함께 하는 신년음악회에서
장윤성이 지휘하는
대전시립오케스트라와 함께 1월 12일 저녁에 공연되었다.
J. Strauss Jr. -
Emperor Waltz for Orchestra O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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