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어떤 적막 / 정현종<시인이 애송하는 詩 100선>-문태준 ▲ 일러스트 장산 어떤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 더보기
그릇1 / 오세영<시인이 애송하는 詩 100선>-정끝별 ▲ 일러스트 권신아 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더보기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시인이 애송하는 詩 100선>- 문태준 ▲ 일러스트 잠산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 더보기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시인이 애송하는 詩 100선>-정끝별 ▲ 일러스트 권신아 文義(문의) 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 더보기
긍정적인 밥 / 함민복<시인이 애송하는 詩 100선>-문태준 ▲ 러스트=잠산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 더보기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시인이 애송하는 詩 <100선>-정끝별 ▲ 일러스트=권신아 전라도 가시네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 더보기
박꽃 / 신대철<시인이 애송詩 100선>-문태준 ▲ 일러스트 잠산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lt;1977년&gt; &lt;작품해설-문태준&gt; 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 더보기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시인이 애송詩 100선>-정끝별 ▲ 일러스트 권신아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