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양애경
장맛비 몰려드는 사이로
잠깐씩 드러나는 파란 하늘
잔인한 폭포처럼 퍼붓는 햇살 아래
대기 전체가 옥수수 찜솥처럼 김을 올리고 있어요
가슴을 조인 끈을 풀어버려요
스펀지, 에어, 실리콘도 뽑아버려요
그리고 후우…… 숨을 크게 쉬어요
조였던 가슴이 아코디언 주름처럼 펴지면서
신선한 공기가 몸 가득 들어와 퍼지네요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잘 익은 하얀 복숭아처럼 둥글고 실한 죄 밖에……
달려가면 아래위로 묵직하게 출렁거린 죄밖에……
벗어버려요
대신 헐렁한 블라우스 가슴 위에
커다란 주머니를 하나씩 달아요
그리고 걸어가 봐요
아무리 인색한 바람이라도
살갗과 옷감 사이로 스며들 수 있게요
풀향기도, 물소리도 스며들 수 있게요
두 개의 유방이 강물처럼 출렁거리게요
심장에 피를 가득 퍼 올리고
허파에 산소를 가득 채워요
원죄도 장식도 아니에요
나를 풀어 주세요
'아름다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창 - 양애경 (0) | 2008.08.04 |
---|---|
남자들에게는 그럴듯한 명분이 많아요 - 양애경 (0) | 2008.08.02 |
봄 아침 - 양애경 (0) | 2008.07.28 |
마티즈의 이브 - 양애경 (0) | 2008.07.26 |
만약 내가 암늑대라면 - 양애경 (0) | 200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