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글

봄바람과 찔레꽃 / 곽재구

 

  

 
 
 
봄바람과 찔레꽃 / 곽재구
 
 
 
 미워하지 마.
사랑해줘
철조망을 넘어온 봄바람이
찔레꽃 덤불에 앉으며 얘기했다.
 

아파하지마
고통이라고 절망이라고
증오라고 생각해 온 것들
그 모든 상실이라고 생각해온 것들에 대하여
다시 눈감고 생각해 줘
찔레꽃이 조용히 눈을 감으며
튀어나온 광대뼈에 눈불빛이 스쳤다.
 

다시 안아줘
누구보다 아름답게 힘세게
부서지게 으스러지도록
다시는 우리 흩어지지 않도록
찔레꽃이 봄바람을 뜨겁게 껴안으며 얘기했다
해일처럼 남쪽에서 봄바람이 불어오고
철조망 아래 쌓인 낡은 뼈들이
오래 아픈 두 눈을 뜨고 있었다.
 

미워하지 마
사랑해 줘
우린 하나니까
끝끝내 헤어질 수 없으니까
대지에 번져가는 봄바람 소리에
구멍 난 철모 녹슨 수류탄
마른 찔레덤불들이 다투어 피어 올라
서로의 가슴에
뜨거운 희망의 낙인을 찍었다
 
 
 

'아름다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사랑의 기록 / 남진우  (0) 2008.03.18
木蓮꽃 브라자 / 복효근  (0) 2008.03.18
기다림 / 곽재구  (0) 2008.03.17
당신을 사랑해요 / 김수현  (0) 2008.03.16
裸木 / 신경림  (0) 200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