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옹달샘 / 김선우
먼 뱃길 선유도
민박 든 뱃사람집 뱃사람은 없고,
쪽마루 천장에 알전구 말간 밤이었네.
팔월이었고,
마당에 모깃불 지펴놓고 쪽마루에 나와 앉은,
아직 젊어 입술이 유도화 같은 섬여자가,
그을린 이마 무색토록 희게 드러난 왼쪽 젖을 아이에게 물리고,
무릎에는 눈썹이 까만 네살배기 아이를 누이고,
느리게 느리게 자장가를 부르는 밤이었네.
/눈 비비고 일어나/세수하러 왔다가/물만 먹고 가지요
바지락밭에서 노래에 취하던 홀시어머니
이른 밤잠에 시든 몸을 기대어보려 하네.
문지방 곁엔 한되들이 백화수복 병하나
찰방이는 밀물 위에 끄덕끄덕 조올고,
물비린내 적요로운 달밤이었네
옹달샘 너무 맑아 세수는 못하고,
입술만 살풋 대고 갔다는 흰토끼의 새벽길이
꼭 오늘 밤 같았을까
나는 왠지 기척을 낼 수 없어
손톱 속 옹달샘을 말가니 들여다보았네
느릿느릿한 자장가 문간방을 열고
내 두 귀를 만져주었네
'아름다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레지 - 김선우 (0) | 2008.05.21 |
---|---|
슬픔이 너무 큰 날은 - 김경미 (0) | 2008.05.19 |
피어라, 석유! - 김선우 (0) | 2008.05.18 |
어라연 - 김선우 (0) | 2008.05.17 |
표절 - 김경미 (0) | 2008.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