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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비굴 레시피 - 안현미

굴국 

 

 

준비할 재료
굴 200g, 무 ⅛개, 홍고추·풋고추 1개씩, 새우젓국물 2큰술, 물 6컵, 소금 적당량

만드는 방법
1 굴은 옅은 소금물에 담가 살살 흔들어 헹군 후 체에 받쳐 물기를 뺀다.
2 무는 채썰고 고추는 반 갈라 씨를 제거한 다음 채썬다.
3 냄비에 물을 붓고 새우젓국물, 굴, 무를 넣어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한 다음 그릇에 담고 고추를 올린다.
 
 

 

 

비굴 레시피 - 안현미

 

재료

비굴 24개 대파 1대

마늘 4알 눈물 1큰술

미증유의 시간 24h

 

만드는 법

1.비굴을 흐르는 물에 얼른 씻어 낸다.

2.찌그러진 냄비에 대파, 마늘 눈물 미증유의 시간을 붓고 팔팔 끓인다

3.비굴이 끓어서 국물에 비굴맛이 우러나고 비굴이 탱글탱글하게 익으면 먹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비굴을 잔굴, 석화, 홍굴, 보살굴,

석사처럼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굴의 한 종류로 읽고 싶다

생각컨대 한 순간도 비굴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므로

비굴은 나를 시 쓰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체하게 하고

이별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당신을 향한 뼈 없는 마음을 간직하게 하고

그 마음이 뼈 없는 몸이 되어 비굴이 된 것이니

그러니까 내일 당도할 오늘도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다

팔팔 끓인 뼈 없는 마음과 몸을 당신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해설 - 김수이 문학평론가>
 
생각해보니, 감정이나 삶의 방식도 요리와 다를 것이 없다. 적절한 재료와 양념을 섞어
한꺼번에 녹아든 혼합된 맛을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자신만의 레시피
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개발이라 불러야 할까, 혹은 계발이라 불러야 할까? 안현미가
말하는 것처럼 감정과 삶의 방식은 혹 정신을 가장한 물질들의 배합은 아닐까, <비굴>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굴과 눈물과 미증유의 시간을 섞어 팔팔 끓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요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제공되지만,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다. 그 혼연일체, 전광석화의 맛을 안현미는 이렇게 적는다.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
다> 맛과 감정과 자세와 정신의 범벅, 혹은 완성, 전광석화의 순간에 깨달은 것이 내가
비굴하다는 사실이라니, 그렇다면,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비굴한가,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이 말을 하는 순간만은 비굴하지 않은가, 혹은 여전히 비굴한가?
 
이 시는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다>는 단 한 줄을 위해 쓰여졌다. 다른 내용은 모두 이 한
줄을 위해 송사하고 있고, 요리법을 활용한 시의 발상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
는 비굴하고 비굴하다>는 한 줄의 시를 읽고 돌아선 후에도 가슴을 아프게 후벼한다. 이
시에서 안현미는 강조된 언어의 권위를 그 의미에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의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한다. 이것이 그녀가 도달하려는 언어와 시의 레시피일 것이다. 오늘이
아니라면, 늦어도 <내일 당도할>!


김수이 문학평론가. '시안詩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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