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글

옥탑방 - 안현미

 
 
 
 
옥탑방 - 안현미


12개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녹슨 열쇠구멍 속에 갇혀있는 옥탑방이 있지

그 방에는
먼지 쌓인 편지들과 당신이 선물한 액자가 있지

액자 속에선
시간을 잃어버린 여자가 삭발을 하고 녹슨 가위는 액자를 오리고 있지

불면을 앓고 있는 컴퓨터는
반송된 e-메일로 용량이 부족하고 커튼도 없는 창문에선 별도 뜨지 않지

물도 주지 않는 선인장은
뿌리가 썩어가고 있지 옥탑방이 울고 있기 때문이지

잃어버린 시간이 울고 있기 때문이지
 
울고 있는 옥탑방 낡은 침대에선
곰팡이꽃이 피고
포자처럼 무성생식 하는 액자 액자들 12개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녹슨 열쇠구멍 속에 갇혀있는 내가 있지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분열을 앓고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한 당신을 사랑한 나를 증오하지

증오하는 나를 사랑하는
나는 녹슨 가위를 들고 동맥을 오리지

피 흘리는 나를 안아주는 나는
당신이 선물한 액자 속에 있는 당신이 사랑한 삭발한 여자에게 말해주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건 사랑도 아니었지
 
냥 지상에서 가장 높은 방에 서로를 모셔두는 일이었지

그래서 당신과 여자는 울지 못하고 옥탑방만 울고 있는 거지
 

 

'아름다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야 세컨드 1 - 김경미  (0) 2008.07.10
편력 - 김경미  (0) 2008.07.09
여자비 - 안현미  (0) 2008.07.03
비굴 레시피 - 안현미  (0) 2008.07.02
계절병 - 안현미  (0) 200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