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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경남 통영 벽방산

 

 

 연초부터 계속된 한파가 다소 주춤하더니

통영 벽방산에 오르기로한 일요일엔 다소 풀려 겨울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중부지방의 산과 들엔 년초에 내린 눈이 혹한으로 녹지 않아

통영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바라본 차창밖 풍경은 눈세상이라서

벽방산에도 눈이 쌓여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남쪽지방이라서 일까?

의상암으로 오르는 산길엔 파릇파릇한 풀이 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산악회 새해 첫 산행...

 

2010년 산행을 시작하면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始山祭(시산제)가 오늘 있을 예정이다.

시산제는 산신에게 정성스레 준비한 제물을 올리고

회원들의 안전산행과 안녕과 발복, 산불방지등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산악회에서 새해 첫 산행 때 하는 행사인데

어떤 모습으로 의식이 거행되는지 궁금하다.

 

버스에서 내린 산객들이 분주하다.

산행준비를 하는 산객

시산제에 사용될 제물을 챙기고 운반하는 산악회 운영진들...

나도 그 행렬을 따라 산에 오른다.

 

*산행코스*

 

산행시작(11:23) - 시산제(12:00 ~ 12:50) - 의상암(오후1:07) - 벽방산(오후 1:39)

- 안심사(오후2시40) - 벽방산 주차장(오후3시)

 

산행시간 : 약 3시간 30분)

 

통영 벽방산 산행지도

 

 벽방산 산행시작(오전11:23)

 

벽방산에 오르는 임도를 따라 아름들이 소나무가 줄을 서있다.

명산고찰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수령 수백년이상된 소나무 숲이 사찰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다.

벽방산을 과연 명산반열에 올릴 수있을까 싶지만

법화종 총림의 고찰인 안정사와 소나무 숲을 볼 때

가히 명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산제 엄수(12:05)

 

정갈이 준비한 제물을 올리고

시산제가 엄수되고 있다.

제주인 산악회 회장이 향을 피우고

분향을 한뒤 산신에게 올릴 술을 따르고 있다. 

 

산악회 회장이 술을 올린 뒤 재배하고 있다

 

산신에게 올리는 재배는 3배를 해야한댄다.

神(신)에게 올리는 제사이기 때문이란다.

 

 독축(12시 09분)

 

산악회 회장이 축문을 읽고 있다.

원래는 제주인 산악회 회장이 俯伏(부복)을 하고 축문은 대독시키는데

산악회 부회장 청산유수님이 부복을 하고

회장이 독축을 하고 있다.

 

  시산제 종료 및 음복(12:40)

 

약 40여분 동안 진행 되었던 시산제가 끝나고

제물로 푸짐하게 준비한 음식과 막걸리를 음복하고

 

돼지머리에는 회원들이 산신에게 바친 봉투가 쌓이고

회원들은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한지를 한장씩 들고 소지(燒紙)도 하고...ㅎ

 

소지(燒紙)의 의미는

不淨(부정)을 없애거나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한지를 사용하고 소지를 한 후 태운재가 공중으로 높이 날아가야 좋댄다.

 

 암튼 산악회원님들...

경인년 한해 아무런 사고없이 산에 오르내리기를

 

 벽방산 산행시작(12:50)

 

통영은 굴의 산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국민이 소비하는 굴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한려수도의 청정한 바다가 있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대전에도 통영 굴요리집이 있어

단골로 다니는 곳이 있는데...ㅎ

 

 

 

 벽방산에 오르는 길목에 의상암이 있는데...

암자 주변에 돌탑이 군데군데 있다.

정성 들여 쌓았다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돌을 쌓아놓은 듯하다.

 

    

 의상암 주지 벽발선자

승헌스님의 글

 

 의상암(오후1 :07)

 

 

  

 삼거리(오후1:15)

 

 경상도 남부지방엔 가뭄이 심한 모양이다.

산길이 매말라 산객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날려

등산화가 먼지 투성이다.

 

 

 한국가스공사 통영생산기지

 

 

 薄霧(박무)로 인해 시계가 흐려 조망이 좋지 않다.

앞에 있는 산은 천개산인 듯하다.

 

 

 

  

 

   

  

   

  

 벽방산 정상(오후1시39분)

  

벽방산碧芳山(650.3m)

 

벽방산은 경상남도 통영시와 고성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碧鉢山(벽발산)으로도 불리운다.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바리때(나무 밥그릇)인 발우(鉢盂)를 닮았다고 하여 벽발산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벽방산이라고 한다.

 

 벽방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통영 앞바다의 한려수도를 조망하기 좋은 산인데

박무가 심해 멀리 조망할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벽방산의 원래이름이 벽발산이었는데...

벽방산으로 불리우는 것은 벽방산에 진달래나무가 많아

봄이오면 잔달래꽃이 만발하여

꽃다울 芳을 써서 벽방산이라고 했을까?ㅎ

 

 

 

 

 성동조선해양과

한국가스공사 통영생산기지

 

 

 

 천개산

 

 

 

   

 안정재방향으로 내려오던 길에 만난 조릿대 군락

 

지리산이나 한라산에서 만났던 조릿대와는 다르게 키가 커서

국화꽃이나 화분 지줏대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잎을 떨군 벽방산자락이 조릿대 숲으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 1년(654년) 원효 스님이

안정사를 창건할 당시에 '의발(衣鉢)을 간직한 채

내세불(來世佛) 미륵을 기다리는 벽발산(碧鉢山)은 참으로 마땅한 절터'라고 언급했다고 해서일까? 

 

벽방산을 산행하는 내내 돌탑을 많이 볼 수 있다.

미륵불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탑을 쌓은 것은 아닐까?

 

작금의 시대는 태평성대인데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국가의 민심은 들끓고 있다.

민심을 바로잡고

국운을 길하게 이끌어줄 賢子(현자)가 벽발산에서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안정재 도착(오후2시13분)

 

 

 

 

 

 

 

 

 

 

 

 안정사에서 바라본 벽방산

 

 碧鉢山 安靜寺(벽발산 안정사)

 

 벽발산 안정사(오후2시45분)

 

벽발산 안정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신라고찰로써 법화종 총림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안정사는 신라 태종무열왕 1년(AD654)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고려 충선왕 원년(AD1309)에는 회월(會月)스님이 중건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자 인조 4년(AD1626), 영조 9년(AD1733) 등에 중건 중수를 거쳐

영조 27년(AD1751)에는 인한(仁閑)스님이 크게 중창했다.

그 후에도 헌종 7년(AD1841)과 고종 17년(AD1880)에도 중수를 계속한 것으로 나타난다.

  

 

 

 

 안정사 만세루

 

 

 안정사 범종

 

 

 

 안정사 冥府殿 명부전

 

지장보살은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대원본존(大願本尊)으로 신앙하고 있다.


   흔히 삭발한 승려의 모습 혹은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

지장보살은 머리 뒤에는 서광이 빛나고 두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나 있는다.

또한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을 주존(主尊)으로 신앙하여 사찰에서 독립적으로 세워지는 건물을

명부전(冥府殿) 혹은 지장전(地藏殿)이라고 부르며,

 

법당 안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로 봉안한다. 그리고 좌우에 시왕을 안치하며

그 앞에 동자상을 안치하고

판관(判官)ㆍ

녹사(錄事)ㆍ

장군(將軍) 등의 존상(尊像)을 갖춘다.

 

또 대개의 경우 지장보살상 뒤에 지장탱(地藏幀)을,

시왕상 뒤에는 시왕탱(十王幀)을 봉안한다.

시왕탱에는 시왕이 생전에 망자가 지은 업을 심판하는 재판장면과 함께

죄과에 따른 지옥의 처참한 광경이 담겨 있고,

지옥 중생을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의 서원상(誓願像)이 함께 하고 있다.


   지장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ㆍ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ㆍ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 널리 유포되고 신앙된 경전은 흔히

 ‘지장경’으로 부르는『지장보살본원경』이다.(출처:웹)

 

 안정사 칠성각

 

칠성이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중국의 도교에서 유래하여  우리나라에서 기우(祈雨), 장수, 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아

조정과 민간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불교에서 받아들여

사찰내에 칠성각을 짖고 칠성신을 모시고 있다.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나타나기 시작하여 우리나리 대부분의 사찰에서

칠성각을 사찰에 세웠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으며,

칠성각에는 칠여래(七如來)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을 탱화를 그려 봉안하고 있다.

(출처:웹)

 

 안정사 대웅전 추녀에 매달린 풍경

 

 

 안정사 대웅전

 

대웅전은 조선 영조 때 인한스님이 중건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조선 영조 때를 전문가들은 조선시대 문화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때라고 하여 진경문화(眞景文化)라고 한다.

그만큼 안정사의 당우들이 지닌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얘기가 된다.

이곳에 봉안된 삼존불은 고려 공민왕 7년(AD1358)에 조성, 봉안됐다고 한다.

 

 안정사 나한전

 

나한전에는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에 오른 성인 16명이 모셔지는데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좌우로 아난과 가섭이 봉안되어 있다.

그 좌우에는 16분의 나한이 웃는 모습과 졸고 있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등 자유분방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500명의 나한이 봉안되기도 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마하가섭이 부처님이 생전의 설법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하였는데

이때 비구가 500명이 모였다해서 500나한이라고 한다.

 

인조 4년(1626년)에 중건한 안정사 나한전은

석가모니불과 16나한등 23위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안정사 범종루

 

 안정사 대웅전과 가마

 

안정사 법당안에는 가마가 놓여있는데...

이는 조선조 억불숭유정책에 따라 안정사에 있는 소나무를 베어 바치라는 지방관리들의 작폐가 끊이지 않자

안정사 스님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안정사에 있는 소나무를 베지 말라는 금송패(禁松牌)를 임금이 내렸다고 하는데

금송패를 싣고 왔던 가마를 대웅전 법당에 보관하여

지방관으로 부터 안정사와 안정사 소나무를 보호하였는데

지금은 안정사의 보물이 되었단다.

 

 

 

 

 

 벽발산안정사 일주문

 

 안정사 부도(浮屠)밭

 

고승들의 사리를 담은 석조 소탑을 부도라고 하는데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후한시대부터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 당나라에서 선종이 들어온 뒤로 祖師(조사)들의 사리를 담은 부도가 세워졌다.

 

문헌상 최초의 부도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7세기 전반 진평왕 때

원광법사의 부도와 백제 혜현의 부도가 세워졌다고 전하고 있어

삼국시대이전에 부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고

통일신라시대 傳(전)흥법사 염거화상탑(844년)이 현존 최고의 부도다.

 

부도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는데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신라말에서 고려초까지 유행했던 우리나라 부도의 전형이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형태가 단순화되어 탑신부만 있는 석종형부도가 유행하였고

석종형부도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말의 태화사지12지상부도가 유명하다.

 

부도는 건축적인 요소 외에도 각 면에 불상이나 여러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고,

또 대부분 탑비에 의해서 그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당시의 사회상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목조 건축양식이나 석조미술의 흐름 등 미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웹참고)

 

 안정사 부도(浮屠)밭

 

 안정사 부도(浮屠)밭

 

 

 

새해 첫 산행이 너무 짧아 아쉽지만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나니

산을 좋아하는 산객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은 듯하다.

통영에 와서 이곳 특산품인 굴맛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니

이 또한 아쉬움이다.

 

인생사 늘 아쉬움이거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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