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글

몸이 큰 여자 - 문정희

 

 

 

 

Fernando Botero

 

 

몸이 큰 여자 - 문정희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해마다 튼튼한 보리를 기르고
산돼지 같은 남자와 씨름하듯 사랑을 하여
알토란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탐스런 여자의 허리 속에 살아 있는 불
저울과 줄자의 눈금이 잴 수 있을까
참기름 비벼 맘껏 입 벌려 상추쌈을 먹는
야성의 핏줄 선명한
뱃가죽 속의 고향 노래를
젖가슴에 뽀얗게 솟아나는 젖샘을
어느 눈금으로 잴 수 있을까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식사 때마다 밥알을 세고 양상추의 무게를 달고
그리고 규격 줄자 앞에 한 줄로 줄을 서는
도시 여자들의 몸에는 없는
비옥한 밭이랑의
왕성한 산욕(産慾)과 사랑의 노래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상인의 술책 속에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이 된 시대의 미인들이
둔부의 규격과 매끄러운 다리를 채찍질하며
뜻없이 시들어가는 이 거리에
나는 한 마리 산돼지를 방목하고 싶다
몸이 큰 천연 밀림이 되고 싶다  

 

 

  

Cello Concerto, ll Lento Allegro molto

- Elgar

 

 

 

'아름다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추억처럼 조가비 하나 - 박철  (0) 2010.03.18
동백이야기 - 문정희  (0) 2010.03.02
연아야 고맙다 - 신달자  (0) 2010.02.27
사랑은 - 이외수  (0) 2010.02.19
찬밥 - 문정희  (0) 2010.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