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글

느낌 - 이성복 느낌 -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Theme from Manon Des Sources 더보기
비 - 이성복 비 1 - 이성복 가라고 가라고 소리쳐 보냈더니 꺼이 꺼이 울며 가더니 한밤중 당신은 창가에 와서 웁니다 창가 후박나무 잎새를 치고 포석을 치고 담벼락을 치고 울더니 창을 열면 창턱을 뛰어넘어 온몸을 적십니다 비 2 - 이성복 머리맡에 계시는 것 같아 깨어보면 바깥에 계십니다 창을 열고 내다보면.. 더보기
사랑일기 - 이성복 사랑일기 - 이성복 1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 가지 않을 수도 없을 때 마음이여, 몸은 늙은 風車, 휘이 돌려보시지 몸은 녹슬은 기계, 즐거움에 괴로움 섞어 잠을 만드는 기계 몸은 벌집, 苦痛(고통)이 들쑤신 벌집 몸은 눈도 코도 없지만 몸을 쏘아보는 蠟銃(엽총)과 몸을 냄새 맡는 누리의 미친개들.. 더보기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 이성복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 이성복 간이 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 더보기
중심 - 심수향 중심 - 심수향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 더보기
샘가에서 - 이성복 샘가에서 - 이성복 어찌 당신을 스치는 일이 돌연이겠습니까 오랜 옛날 당신에게서 떠나온 후 어두운 곳을 헤매던 일이 저만의 추억이겠습니까 지금 당신은 저의 몸에 젖지 않으므로 저는 깨끗합니다 저의 깨끗함이 어찌 자랑이겠습니까 서러움의 깊은 골을 파며 저는 당신 가슴속을 흐르지만 당.. 더보기
꽈리를 불며 - 심수향 Door Is Open - Oystein Sevag 꽈리를 불며 - 심수향 꽈리 한 알, 가을 햇살에 입술 데여 봉긋한 꼬투리 찢어지면, 거기 조그만 태양 하나 발갛게 불타고 있다 잠시도 머물다 가는 시간 없어 세상의 발들은 바쁘지만 면벽한 꽈리는 홀로, 단단하게, 깊이 익어가고 있다 스무 해 정도 가부좌를 튼 首座 같기도 하.. 더보기
슬픔 - 이성복 슬픔 - 이성복 그대가 내지 않은 길을 내가 그대에게 바랄까요 그대가 내지 않은 길을 그대가 나에게 바랄까요 그래도 내 가는 길이 그대를 향한 길이 아니라면 그대는 내 속에서 나와 함께 걷고 계신가요 나를 미워하고 그대를 사랑하거나 그대를 미워하고 나를 사랑하거나 갈래갈래 끊어진 길들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