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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桃花(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桃花 아래 잠들다 - 김선우

 


동쪽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도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 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어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쓰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 밖의 봄날

 

 

김선우 詩人

 

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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