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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대둔산종주2(수락재 -깔딱재 -829봉 -마천대 -왕관바위 -낙조대-석천암)

  

 월성봉에 오를 때 우려했던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구름이 대둔산을 휘감아

대둔산자락의 크고작은 봉우리와 암벽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밝게 비춰 멀리 덕유산 천황봉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829봉을 향해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산길을 재촉하고...

 

 

 

 

 

 

암릉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아래서

초코렛을 씹고

물한모금 넘기며 원기를 충전하고...

 

 

 

 

 

 

 

 

용을 닮았다는 소니무

나뭇가지가 자라다 바위에 걸려 다시 돌아온 모습이

승천하는 용을 닮았단다ㅎ

 

소나무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탁월한 듯 하다.

척박한 곳에서도 기름진 땅에서도 환경에 맞게 성장한다.

산능선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능선이라서 숲의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키가 크게 자라지 않고 가지를 옆으로 길게 뻗고

작은키지만 몸집은 분재처럼 크다.

 

산 중턱에 자라는 소나무는 주위의 참나무 기타 잡목과 경쟁하며 성장하기 때문에

키가 크고 기름진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해

몸집도 크게 자란다.

 

대둔산 능선에서 자라는 소나무 대부분은

어린나무일 적에에 자랐던 가지를 온전히 지키고 있어

소나무를 감상하는 산객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바위틈에 자리를 잡은 소나무가 한폭의 그림같다.

 

 

돌양지꽃

바위틈 한줌의 흙에 뿌리를 내렸지만

꽃나무의 영양상태가 좋아보인다.

 

 

장미과의 식물이라더니 이파리도 꽃도 마치 찔레나 장미꽃 같다.

6월 말부터 계속된 장맛비로 꽃봉오리도 노란꽃도 싱그럽다.

 

 

 

 

 

암릉사이를 걷고 있는 청산유수님과 산지기님

 

바위틈엔 돌양지꽃

산객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소나무

도토리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다.

 

 

 

 

모자채양이 길어 시야가 좁아 소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이마에 콩알이 생길정도다...ㅠ..

모자를 돌려 썼다.

 

 

 

 

 

 

 

암벽사이에 피어있는 원추리꽃

 

어딜 바라보고 있을까

고운님을 기다리는 것일까

서산에 해지면

노란꽃도 지고마니...

서쪽하늘 바라보며

중천에 해

하냥 떠있길 기원하는 것일까

 

사진사는 외롭고 고달프다.

산객들의 멋진 모습 담을 줄만 알았지

자신의 모습은 남에게 맡겨 담아야한다.

 

아름다운 풍경 만나면 사진에 담으려다

일행과는 거리가 멀어져 

헐레벌떡 달려가야하고...

 

 

 

대둔산이 거느린 능선은 대부분 암릉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 숲만보이는데

다가가면 바위길이다.

 

 

 

 

점심 도시락을 펴보았다.

김장김치, 멸치조림, 계란말이, 고추조림, 나물, 배추겉저리

마늘, 풋고추...ㅎ

829봉까지 오면서 물을 많이마셨더니

점심 때 마실 물이 없다.

마천대에 오르면 생수를 판매한다니 다소 안심이 되고...

점심반주로 송순주를 마셨다.

날씨도 덥고 갈증이 심하니 술을 마시지 않았어야했는데...

이후 산행이 무척 힘들었다.

산지기님이 자연차가 있다고 한컵 따라주길래 마셨더니 술이다.ㅎ

신시도 산행했을 때 반주로 마신 술 땜에

오후 산행이 힘들었는데...

오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노무 술...

입에 넣으면 술술넘어가니...ㅎ

 

 

 

 

  

 

 

돌양지꽃

노출조정을 잘못해 꽃이 선명하지 않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물이 떨어져 갈증은 심한데...

아직 갈길은 멀고...ㅎ

 

 

 

 

 

짚신나물

 

 

큰까치 수염이 봄부터 피우던 꽃은 이미 열매를 맺고

막바지 꽃을 피우고 있다.

 

어릴적 누나가 봉선화 꽃물을 들이면

손톱이 자라면서 봉선화 꽃 손톱은 점점 작아지고...

보름달이 반달이 되고 초승달로 변해가는

 

그런 누나의 손톱이 예뻤는데...

큰까치수염을 보면서 누이생각을 하다니...

 

 

조록싸리꽃

 

 

 

노랑망태버섯

 

 

망태버섯(식용)

 

월성봉에 오르면서 많은 버섯을 보았기에

망태버섯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앞서가던 산지기님이 망태버섯을 보고 나를 부른다.

두송이가 피어있었는데...

한송이는 멀리 있어 가까운 곳의 망태버섯을 방향을 달리해 담아보았다.

 

 망태버섯은 7~8월 잡목림 그늘진 곳에서

새벽 6시쯤 피기 시작하여 자루가 성장하고 망태가 펼쳐지는데

4시간 가량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하루살이 버섯이다.

우리눈에 망태버섯이 눈에 들어온 것이 행운이다.

 

대나무 밭에서는 하얀 망태버섯이 자란다던데...

생전에 한번 담아 볼 수 있으려나?

 

 

 

 

 

대둔산의 최고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똑딱이라서 모두 담을 수 없다.

 

 

 

 

참나무 잎이 싱그러운 모습이다.

 

 

 

암벽을 등반하는 젊은이들이 찾는 대둔산

 

 

임진왜란 때 매우 중요한 싸움이 배티재에서 있었고,

그 배티재 싸움의 승리가 임진왜란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에 쳐들어온 왜군의 전략목표는 수도의 공략과 함께 군량 확보를 위한 곡창 호남의 점령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남해와 호남 남부에서 진로가 막힌 왜군은

곳곳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호남으로 진입하려고 안간힘을 쓰게 됐다.

왜군은 첫번째로 진안의 곰티재를 넘어 호남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실패하자

금산으로 모여들어 진산에서 배티재를 넘으려 했다.


1592년 7월 왜장 고바야가와 다까가게가 이끄는 2만의 왜군이

배티재(梨峙, 옛날에 돌배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

지금도 골짜기에 한 그루가 군 지정 보호수로 남아 있음)를 넘어 호남으로 침입하려는 것을

당시 광주목사였던 권율 장군과 동복현 황진 현감이 1,500명의 적은 병력으로 이를 막아 크게 이겼던 것이다.
왜군은 여기서 큰 손실을 보고 호남 침입을 포기했다.

 

이 싸움은 배티재의 금산쪽 골짜기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 왜군의 부상자들이 물러나 머문 곳이 울움실(금산군 묵산리)로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배티제 들머리에 권율 장군의 이치대첩비가 있으며,

고갯마루에는 황진 장군의 전승비가 있다.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을 회고하며

이치대첩이 행주대첩보다 더 중요한 승전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출처 : 웹)

 

 

 

1950년 9월 북으로 패주하던 북한군의 패잔병이 험준한 대둔산을 근거지로 삼아

벌곡, 양촌, 연산, 가야곡, 논산, 강경, 금산, 공주, 대전 등 충남지역은

물론 완주군, 진안군 등 전북 지역까지 출몰하면서

양민학살, 식량약탈, 관공서 습격 등 단말마적 만행을 자행하였다.


대둔산 지역의 공비는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 거점을 둔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휘하에 소속되어

한때는 자칭 남한 빨치산 총책 남출열 등을 비롯하여

소위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38선, 한듬산 부대장 등 거물급 공비들이 총 집결되어

20,000여명이 넘는 경시할 수 있는 세력으로 도내 치안 기반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치안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충남 경찰국에서는

대둔산 지역의 공비토벌을 전담할 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를 창설하여

공비 토벌 작전을 수행케 하였는바

공비 출몰 지역에 거주하는 청장년들도 분연히 궐기하여 경찰작전에 동참하므로써

명실공히 지역주민과 경찰관이 혼연일체가 된 향토방위 작전을 전개하였다.

 

1950년 9월부터 1955년 1월까지 장장 6년간 적과 조우하여 혈전을 거듭하기 수백회,

전방전선인 38선에는 이미 휴전이 성립되어 포성이 멎은지 오래 되었어도

후방 지역인 대둔산 지역의 공비토벌 작전은 치열하게 계속 되었었다.


충용무쌍한 전투경찰 대원들은 조국수호와 향토방위의 일념으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용전분투하여 적사살 2,287명, 생포 1,025명 이외에 다량의 무기탄약과 장비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린반면

작전중에 경찰관, 의용경찰 및 애국청소년 등 1,376명이 조국이 수호신으로 장열하게 산화하였다.

1955년 1월 2일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항거하던 공비, 압록강 부대장 김종하를 생포함으로써

충청남도의 산하에는 총성이 멈추고 잃었던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출처 : 웹)

 

 

 

 

 

 

남한 빨치산의 공식적인 총수 이현상은

금산에서 전주이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고창고등보통학교에 다녔으나

중퇴하고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중앙고보 재학중이던 1925년 조선공산당 창설에 참여했으며,

1926년 6·10만세사건 때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27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하여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산하의 학생부위원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학생 야체이카회, 독서회 등에서 상무위원·

상무집행위원·책임비서 등을 맡아 활동했다.

 

1928년 8월 반일동맹휴학을 주도하던 중 일제에 검거되어

지하조직인 세칭 'ㄱ당 학생공산당사건'에 연루된 혐의 및

치안유지법·보안법·출판법 등의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4년간 복역했다.

출소 이후 박헌영·김삼룡 등과 함께 지하활동을 하면서 경성 콤 그룹을 결성하여 당 재건을 준비했다.

 

8·15해방 후 이들이 중심이 된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했고

남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된 후에는 연락부장 등의 요직을 맡았다.

남한에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됨에 따라 박헌영·이승엽 등과 함께 평양으로 갔으나

1948년 당의 결정에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투쟁을 시작했다.

6·25전쟁중인 1950년 9월 전황이 불리해지자

조선인민군과 함께 그의 부대도 후퇴하여 강원도까지 북상했다.

 

같은 해 11월 다시 남하하라는 당의 명령에 따라 소백산지역으로 내려왔으며

1951년 5월 덕유산에 도착했다.

같은 해 7월 이곳에서 그의 주재로 최초의 '남한 6도 당위원장회의'가 열렸고

이때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그는 '공화국 영웅'의 칭호까지 받았으나

1953년 9월 18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우리가 걸어왔던 산길

 

 

 

 

눈앞에 마천대가 보이고

 

 

 

 

 

 

 

 

 

 

 

 

 

 

 대둔산은...

 

높이 878m. 노령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오대산·천등산 등이 있다.

최고봉인 마천대를 비롯하여 곳곳에 기암괴석이 나타나고,

남동쪽과 북서쪽 사면을 따라 각각 장선천과 독곡천이 흐른다. 

 신갈나무·졸참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림을 이루며,

600m 이하 지역에는 개비자나무·상수리나무·소나무 등이 자란다.

그밖에 고채목·천마. 제비난초 등의 희귀식물이 자란다.

산의 동쪽 2㎞ 지점에 위치하는 높이 350m의 배티재[梨峙]

예로부터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주요통로였으며,

현재 여수-청주를 잇는 국도가 통과한다.

 

태고사·안심사·낙조대·월성고지·철모봉·깃대봉 등의 명승지가 있으며,

특히 마천대에서 낙조대까지의 산세가 매우 아름답다.

동쪽 산록에는 옛 고을인 진산이 있으며, 산장·구름다리·

케이블카 등의 관광시설을 갖추고 있다.

기암절벽이 절경인 전라북도 대둔산도립공원과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충청남도 대둔산도립공원으로 구분된다.

(출처 : 웹사전)


 

 

 

 

대둔산은 동학혁명 때 전봉준, 김개남 장군이 체포 된 후

투항을 거부하고 동학 접주 25명이 이곳 대둔산 정상에 피신하여

요새를 설치하고 일본군과 3개월간에 걸친 치열한 항전을 하다가 1895년 2월 어린이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동학접주 김석순선생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1~2살 어린이를 안고

절벽으로 투신했다고 한다.

 

 

 

대둔산 마천대에 핀 큰뱀무

 

 

 

 

 

 

 

전라북도 대둔산도립공원쪽으로 가는 하산길...

케이블카 -신선암-장군봉- 금강구름다리- 삼선계단

 

 

 

삼거리 매점에서 생수를 사서 목을 축이고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조그만 물한병이 1,600백원...

그래도 물은 꿀맛이다.

 

 

산객은 점점 힘들어져가고...

 

 

 

 

 

 

 

왕관바위

 

 

 

 

 

 

왕관바위를 향해...

 

 

맨손으로 암벽등반하시는 청산유수님...ㅎ

 

 

 

 

 

 

왕관바위 위에서...

 

 

 

 

 

 

 

 

왕관바위에서 바라본 대둔산 개척탑

 

 

 

 

참취

 

 

 

 

 

꿩의다리

 

 

 

 

낙조 산장은

논산시에서 지어 개인에게 임대해서 

산객들에게 대피소겸 동동주, 음료수와 컵라면, 과자등을 판매했는데

관리가 소홀해서

다시 논산시에서 회수해서 관리하고 있으나

지금은 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비닐로 덥여저 있는 우물을 들춰봤더니

도룡뇽알이 있다.

물병에 담아 갈증을 풀고...

 

 

낙조산장 뒤 암벽에 있는 마애불

 

 

 

 

 

 

낙조대

낙조대에 오르니 대둔산 북릉이 한눈에 보인다.

햇빛이 너무강해 오래 머물 수 없어

석천암으로 하산...

 

 

대둔산 낙조대 북릉에서 수락마을의 저수지와

우리가 처음 산에 오르기 시직한 월성봉이 보인다.

 

대둔산 북릉도 암릉이다.

크고 작은 바위와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사진을 많이 담았더니 디카 전지가 수명을 다해간다.

아직도 담고 싶은 풍경이 많은데...

이제부터는 가슴에 담아야할 듯하다.

 

 

좁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를 보니 맘이 짠하다.

좁고 매마른 한줌의 땅에서도

저리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활짝 가지를 벋고

푸르름을 자랑하는데...

나름 풍요로운 세상속에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세상탓으로 돌리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곳의 소나무를 본받아야한다.

 

 

 나무계단과 돌길을 지나 아래로 내려오니

산길에 철조망이 쳐있다.

석천암인 듯하다.

숲에서 나무와 돌과 바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神을 모시는 분들이

神과 벗하며 살아가는 나무에

못질을하고 철망을 두를 수 있는가.

관계당국에서도 이를 방치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석천암에 오르니 검둥이가 마중나온다.

낯선사름을 보면 짖어대는게 개의 습성인데

이곳의 검둥이는 꼬리를 치며 산객을 맞이한다.

산에 살다보니 신선이 된 듯...ㅎ

 

25m암벽사이에서 석천약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논산시에서 관리하는 듯 수질검사표가 게시되어 있다.

 여장을 풀고 시원한 약수를 받아마시니

어찌나 시원한지 이가 시릴 정도다.

 

청산유수님이 머리를 식히고자

함지박에 떨어지는 약수를 바가지에 떠서 머리에 붓는다.

암자의 눈치가 보였지만

약수가 땀에 절어 만든 소금기를 씻어내니 산행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암자에서 30~4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문을 열고 빼꼼이 우리를 바라보더니

밖으로 나와 마루에 앉아 대둔산을 주시하고 있다.

여자무당인듯 하다.

여인이 앉아 있는 암자 앞에 조그만 기와집이 있어 다가가 안을 살펴보니

신선인 듯한 분이 모셔져 있었다.

 

산지기 님이 말씀하시는데

이곳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사찰이 아니라

굿당이란다.

 

석천암에서 물병에 약수를 받아넣고 길을 나섰다.

우릴 반겨준

犬公(견공)에게 인사를 하고...

계곡에서 갈림길이다.

계곡으로 가면 바위와 돌이 많아 위험하니

계단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고 산지기 님이 말씀하셔서

400여 미터를 다시 올라

갈림길에서 능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산길을 얼마 내려오니 최근에 설치한 듯한

나무계단이 있고

우측으로는 암벽과 소나무가 있어 경치가 좋았다.

계단이 400여개가 넘는 듯...

 

계단을 모두 내려오니 수락폭포 있다.

장맛철이라서 수량이 풍부하고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려

산객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해주었다.

수락계곡을 찾은 피서객이 수락폭포 웅덩이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마음같아서는 우리들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산지기 님이 좋은 곳이 있다며 참으랜다.

 

이곳 부터는 계곡길이다.

좌측으로 시원한 물이 흐르고 듬성듬성 피서객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좁은 계곡에 나무가 우거져 어둡다.

 

대둔산 공비토벌 승전탑을 지나

주차장근처에서 산지기님의 안내를 받아

알탕을 즐기러 갔다.

 

피서객이 많지 않아 사람이 없는 물웅덩이에서

등산복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니

물이 차가워 소름이 돋을 정도다.

 물속에 들어가 30초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시원하다.

 

알탕을 즐기고 새등산복을 갈아입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귀가길에 관저동의 추어탕집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곁들여 미꾸라지숙회와 저녁을 들고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산에 오르기 전엔 주요 관광지 중심으로 산에 올랐는데...

 산이 좋아 오르다보니

 산이 품고 있는 속살인

숲과 기암괴석을 모두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우리가 둘러본 대둔산 등산코스는 많은 분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금남정맥을 종주하시는 분들만 찾는...

 산을 좋아하는 분들만이 대둔산의 참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좋은 산을 소개해주시고 함께 산행에 참여해주신

산지기 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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