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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백목련 진다 - 김선우 백목련 진다 - 김선우 이상하다, 계곡을 몰아쳐오는 눈보라 저 눈꽃떼를 어디서 만났던가 꽃으로 오기 전 네가 눈보라였다면 나는 무엇이었나 청명한 봄 한나절 돌연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내장을 따라 들어선 계곡에 꽃, 잎새도 없이 만개한 寂滅寶宮(적멸보궁) 얼음 녹아 아지랑이 흐르는데 왜 너는 .. 더보기
꽃자리 - 정희성 꽃자리 - 정희성 촉촉히 비 내리던 봄날 부드러운 그대 입술에 처음 내 입술이 떨며 닿던 그 날 그 꽃자리 글썽이듯 글썽이듯 꽃잎은 지고 그 상처위에 다시 돋는 봄 그 날 그 꽃자리 그 날 그 아픈 꽃자리 더보기
來歷(내력) - 김선우 내 력 - 김선우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여인의 성기는 비탈을 닮아간다는, 세간속설이.. 더보기
雲株(운주)에 눕다 - 김선우 雲株에 눕다 - 김선우 가시연꽃을 찾아 단 한번도 가시연꽃 피운 적 없는 운주사 에 가네 참혹한 얼굴로 나를 맞는 불두, 오늘 나는 스물아홉 살. 이십사만칠천여 시간이 나를 통과해갔지만 나의 시간은 늙은 별에 닿지 못하고 내 마음은 무르팍을 향해 종종 사기를 치네 엎어져도 무르팍이 깨지지 않.. 더보기
왕모래 - 김선우 왕모래 - 김선우 강릉 정동 봄바다 오랜 지병의 어머니와 달마중하러 나왔는데 모래 한 줌 쥐니 솨아아, 봄날은 가고 모래 한 줌 속에 일곱 남매 눈망울이 영글어 "이쁘쟈?" 왕모래 몇 알갱이 손에 건네주신다 안 하던 일을 하면 북망이 멀지 않다는데 틀니 달칵거리며 소녀처럼 "이쁘쟈?" 가슴이 출렁한.. 더보기
完經(완경) - 김선우 完經(완경) - 김선우 수련 열리다 닫히다 열리다 닫히다 닷새를 진분홍 꽃잎 열고 닫은 후 초록 연잎 위에 아주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禪定(선정)에 든 臥佛(와불) 같다 수련의 하루를 당신의 십 년이라고 할까 엄마는 쉰 살부터 더는 꽃이 비치지 않았다 했다 피고 지던 팽팽한 赤衣(적의)의 화두마저 .. 더보기
거꾸로 가는 생 - 김선우 거꾸로 가는 생 - 김선우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의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 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 더보기
민둥산 - 김선우 민둥산 - 김선우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 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 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