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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무료의 날들 / 김명인 무료의 날들 / 김명인 낮잠 들었다 깨어나니 어느새 모과나무 그늘이 처마 밑까지 점령해 있다 나는, 나무 한 그루 받들 만한 공간보다도 좁은 빈터를 골목이라고 내다놓은 길 저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사이 마을 버스가 두 번,트럭 한대, 승용차가 여섯 대, 문득 비 소식이 있다는 울진 집으로 전.. 더보기
아침 그 길을 갑니다 / 김용택 아침 그 길을 갑니다 / 김 용 택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은 새벽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 길가에는 흰 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 날아갑니다 새 풀잎마다 이슬은 반짝이고 작은 길은 촉촉히 젖어 나는 맨 발로붉은 흙을 밟으며 어디로 가도 .. 더보기
섬 - 김명인 섬 - 김명인 이 그리움 조차 끝끝내 그대에게 닿지 못했다 그걸 배우며 사는 자의 상처를 적시는 파도소리 지치도록 퍼올려지는 바람곁에 나 쓸쓸히 풍화하는 잠으로 누우면 그대 어느새 한 개 뜬 섬 축축한 눈물로 솟고 저물도록 출렁이는 수평선 위엔 자리 바꾸는 별빛 희미하게 껌벅거린다. 더보기
등 - 김명인 등 - 김명인 관절이 결려 오금도 못 펴시는 어머닐 업으려다 힘에 부쳐 내려놓고서 생각해보니 나도 그녀 등에 업혔던 어린 날이 없다 두어 살 터울로 동생들 줄줄이 태어났고 포목점으로 싸전으로 가족의 생계 혼자서 꾸러 가시느라 등이라면 내겐 할머니 꺼칠했던 숨소리로 되살아날 뿐 어머니는 어.. 더보기
능소화 - 김명인 저 능소화 / 김명인 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 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 몇 송이로 펼치는 生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 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 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 여름을 익힐 대로 익혔다 누가 화염으로 타오르는가, 능소화 나는 목숨을 한순간 몽우리.. 더보기
등꽃 - 김명인 등꽃 - 김명인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 져내리면 .. 더보기
立雪斷臂(입설단비) - 김선우 立雪斷臂(입설단비) - 김선우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 더보기
새벽편지 - 곽재구 새벽 편지 / 곽재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