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글

酒 - 문정희 酒 - 문정희 술이 나를 찾아오지 않아 오늘은 내가 그를 찾아간다 술 한번 텄다 하면 석 달 열흘 세상 곡기 다 끊어버리고 술만 마시다가 검불처럼 떠나가버린 아버지의 딸 오늘은 술병 속에 살고 있는 광마를 타고 악마의 노래를 훔치러 간다 그러나 네가 내 가슴에 부은 것은 술이 아니라 불이었던가 .. 더보기
나의 아내 - 문정희 나의 아내 -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 더보기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戀歌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 더보기
겨울사랑 - 문정희 한라산 눈꽃 겨울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되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String Quartet No. 63 in B flat major 'Sunrise' Op.76/4, H. 3/78, ll - Haydn 더보기
나목裸木 - 신경림 동월계곡 둘레산 나목裸木 - 신경림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 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 더보기
사랑해야 하는 이유 - 문정희 사랑해야 하는 이유 - 문정희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새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면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 더보기
저녁 무렵 - 도종환 저녁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이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 안고 가야할 사람이 있다. 끓어 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 감기 시작하는 저녁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 더보기
낙엽 - 도종환 대전둘레길의 낙엽 낙엽 - 도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가슴에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 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 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