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글

봄 - 김광섭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 더보기
겨울 일기 - 문정희 겨울 일기 -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 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 더보기
찔레 - 문정희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 더보기
한 사내를 만들었다 - 문정희 한 사내를 만들었다 - 문정희 과천 뒷산 작업실에서 조각가 K의 흙으로 한 사내를 만들었다 푸르른 내 시간의 물방앗간에서 고딕체로 쿵 쿵 방아를 찧던 남자 오늘은 흙 묻은 손으로 눈과 어깨와 전신을 꿈틀거리는 입술을 진종일 만지고 주물러 내 앞에 분명하게 세워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수천 도의.. 더보기
석남꽃 - 서정주 석남꽃 - 서정주 머리에 석남(石南)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번 살아 볼꺼나 Carnaval, Op. 9, llll - Schumann 더보기
석남꽃 - 문정희 석남꽃 - 문정희 새벽 두 시인데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나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아요 저녁 때 사거리에서 청담사거리를 묻는 노인에게 그만 봉은사거리를 가리키고 말았어요 그 노인은 지금 쯤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요 청담사거리를 찾다 지쳐 수천마리 귀뚜라미들을 데리고 쓰러져 있을까요 외줄.. 더보기
젊은 날 - 문정희 봄맞이 꽃 젊은 날 - 문정희 새벽별 처럼 아름다웠던 젊은날에도 내 어깨위엔 언제나 조그만 황혼이 걸려 있었다 향기로운 독버섯 냄새를 풍기며 손으로 나를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무수히 빠져 나가는 은비늘 같은 시간들 모든 시간이 덧없음을 그 때 벌써 알고 있었다 아! 젊음은 그 .. 더보기
사랑하는 것은 - 문정희 노박덩굴 사랑하는 것은 - 문정희 사랑하는 것은 창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오래오래 홀로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슬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합니다." 풀꽃처럼 작은 이 한마디에 녹슬고 사나운 철문도 삐걱 열리고 길고 긴 장벽도 눈 녹듯 스러지고 .. 더보기